1908년 7월 20일, 유도헌이 안부인사와 송천에 사심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08년 7월 20일에 柳道獻(1835-�1909)이 안부인사와 松川에 사심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유도헌은 먼저 봄에 恕卿 집의 인편을 통해 편지를 보내고 며칠 뒤에 서경을 만나 편지를 전달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상대방의 아들이 받지 못했다고 하니 혹시 중간에서 유실된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몇 달 째 연락이 안 되고 심한 무더위를 겪으니 항상 그리운 마음이 든다고 하고, 초가을에 상대방과 집안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근래 고향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왕래하며 객지에서 지내는 생활이 괴로울 것이라고 하면서 “낡은 상과 엉성한 자리가 도리어 아름다운 곳이 되고, 바람에 빗질하고 목욕하는 것이 도리어 나쁘지 않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객지에서 고생하는 상대방을 위로하였다. 또한 상대방 부친의 문고를 가을에 重刊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支伯에게서 들었는데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유도헌 자신은 더위를 먹어서 힘이 다 빠진데다가 세상 소문이 날로 흉흉해서 매우 탄식스럽지만 믿을 것은 하늘뿐이니 하늘에 맡길 뿐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상대방이 지난번 편지에서 송천의 일에 대해 언급했는데, 자신이 어찌 송천에 사심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겠느냐고 하면서 헤아려달라고 하였다.
유도헌은 자가 賢民, 호가 田園, 본관은 豊山으로 가운데 숙부 柳進翰(1798-1856)에게 출계 갔고 생부는 柳進翼(1787-1851)이다. 만년에 遺逸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를 지냈고 저서로는 『田園集』이 있다. 그의 아버지 이진한은 1844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였고, 조부 柳相祚(1763-�1838)도 1794년 문과 을과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豊安君으로 襲封되었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에는 우측에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남아 있는 여백에 남은 사연을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