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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김응섭(金應燮)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907.4717-20110630.00632570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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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응섭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07
형태사항 크기: 25.4 X 20.7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7년 김응섭(金應燮) 서간(書簡)
1907년(융희 1) 4월 18일에 김응섭이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이 벼슬길에 나갈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보를 보고는 탄성을 터졌다고 하였다. 이어 상대방과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집안 식구들은 평안하다고 하면서 마을에 전염병도 없어지고 있는지 물었다. 류촌의 숙부가 그저께 덕어학교의 교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상대방의 관직 제수가 지체되다가 오늘 관보에 실렸다고 하면서 부임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였다. 그리고 아호장판윤이 이달 23일에 출발하니, 필요한 여러 물건을 마련하여 그를 기다리는 게 어떠하냐고 물었다. 추가하여 기록한 글은 보내준 안부편지와 음식이 매우 요긴했다는 내용이다.
서진영

상세정보

1907년 4월 18일, 김응섭이 상대의 벼슬길 소식에 축하하고 안부를 물으며 이외 여러 근황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07년(융희 1) 4월 18일에 金應燮(1878-1957)이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 김응섭은 洛厓 金斗欽의 손자인 金秉璿의 아들이다. 그의 자는 景章이고, 호는 東田이다. 그는 漢城法官養成所를 졸업하여, 咸興裁判所檢事를 역임하고 국권피탈 이후에는 변호사로서 활동하였다. 1908년에는 嶠南敎育會의 임원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金東三과 함께 임시정부에 참여해 법무 차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이후 사회주의자로서의 길을 걸어 고려공산당에 참여하였고 직접 韓族勞動黨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시기적으로 보면 아직 만주 망명 이전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김응섭은 상대가 벼슬길에 나가리라는 것을 미리 헤아리고 있었는데 朝報를 보고는 탄성을 터트렸다고 하였다. 이어 상대와 그 가족 등의 안부를 물었다. 또한 자신의 집안 老少도 평안하며 村閭에 전염병 기운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지도 물었다. 김응섭은 배우는 일이 점점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하였고, 再從祖 댁의 여러 가족들이 모두 평안하므로 다행하다고 하였다. 柳村의 숙부가 엊그제 德語學校의 敎官으로 서임되었기에 매우 다행하다고 하였다. 류촌의 숙부란 이 당시에 官立漢城德語學校副敎官에 임명되었던 金秉夔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김응섭은 상대의 관직 제수가 지체되다가 마침내 임용 사실이 오늘 官報에 게재되었다고 하면서, 비록 判任이 10級이지만 그만두는 것보다는 나으니 기별을 듣는 날에 곧바로 부임하는 게 어떠하겠느냐고 하였다. 鵝湖張判尹(鶴巖 張華植인 듯함)이 이달 23일에 출발한다고 하므로 속히 부임에 필요한 여러 도구들을 마련하여 그를 기다리는 게 어떠하겠느냐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전날 안부편지를 보내줬던 것이 아직도 감사하다고 했고 보내준 음식물도 매우 요긴하였다고 했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 내용이 길지 않기 때문에 회전형식에 이르지는 않았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풍산김씨세보』,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7년 김응섭(金應燮) 서간(書簡)

筮仕 預料者 而接見邸報 尤覺叫奇 更詢梅雨
重省餘棣仕履珍重 都節均安 而吾家尊少節
亦安相 村閭漸至淸淨否 溯溯區區 族從 一直旅瑣
無足奉聞 學事 漸至難耐 奈何 惟再從祖宅諸節
一安 柳村叔侍 日昨 得敍德語學校敎官 何幸如之
君之一命 延拖到今 竟於今日官報揭載 而以所願
尙州學校 得成 雖是判任十級 猶愈於已 聞
奇之日 速速具色 卽爲赴任 如何如何 到任訓令 當於今晦
內覓送 而鵞湖張判尹 今念三發程云 其時似不晩矣
來速辦赴任諸具 以待 如何如何 餘在畬山叔侍書中 必詳
之矣 不宣候儀
丁未四月十八日 族從 應燮 拜賀

前日惠問 尙感 而所送食物 尤緊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