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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김정섭(金鼎燮)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907.4717-20110630.006325700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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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정섭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07
형태사항 크기: 21.4 X 42.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7년 김정섭(金鼎燮) 서간(書簡)
김정섭은 인생에서 평안히 지냈던 날이 없었기에 애가 탄다고 하였다. 또 근래 가을 추수하는 일이 골치가 아파서 겨우 자리보전하고 있다고 하였다. 더구나 달포 남짓 막내 동생과 떨어져 지냈으므로 모든 상황이 근심거리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잘못 전해져 소동을 일으킨 어떤 소문의 단서가 갈수록 두렵다고 하면서 좋은 시절을 만나지 못한 탓을 하였다. 외에도 宣使의 도착 시일 여부, 오산 숙부의 관직 부임에 대한 걱정 등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상대 집안의 결혼식 날짜가 다음 달로 정해졌다고 하니 그때를 이용해 혹 만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하인인 쌍만이에 대해 매우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온 지가 이미 수십 일이나 되었는데 이 사이 우리 군의 일본 병사에게 말[馬]이 붙잡혀서 왕복하는 데에 4, 5일이 걸렸고 또 무사히 지났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였다.
김동현

상세정보

1907년 9월 5일, 김정섭이 어지러운 시절에 주변 상황에 대한 걱정을 하며 상대 집안의 혼사 날에 만나기를 기약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07년(융희 1) 9월 5일에 韋庵 金鼎燮(1862-1934)이 보낸 편지이다. 김정섭은 자가 景九, 본관이 豐山으로, 雲齋 金秉璜의 아들이다. 영감댁의 주손이다.
김정섭은 통틀어 꼽아볼 때 평안히 지냈던 날이 없었기에, 애가 타는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근래 가을일로 골치가 아파서 숨이 막히고 어지러운 증상으로 자리보전하고 있다고 하였다. 더구나 달포 남짓 막내 동생인 金奎燮(1884-1958)와 격조하였으므로 모든 상황이 근심거리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김정섭은 騷訛의 단서가 갈수록 두렵다고 하면서, 이 세상에 나서 좋은 시절을 만나지 못하였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하였다. 宣使가 과연 언제쯤 이곳에 도착하는지도 물었다. 梧山의 숙부가 벌써 부임하신 지 보름이 되었는데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만났으니 축하하는 마음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크다고 하였다. 끝으로 상대 집안의 혼인 날짜가 내달로 정해졌다고 하니 그때를 이용해 혹 만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雙萬이에 대한 걱정이 만단이라고 하였다. 온 지가 이미 수십 일이나 되었는데 이 사이 本郡의 日兵에게 말[馬]이 붙잡혀서 왕복하는 데에 4, 5일이 걸렸고 또 무사히 지났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회문형식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추록을 행간에 좌측에서 우측으로 이어서 내용을 기록했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약 4번에 걸쳐 줄을 바꾸거나 대두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7년 김정섭(金鼎燮) 서간(書簡)

別來 依悵殊切 迺者獲奉
惠問 感喜交集 尙此未已 籍審
旅仕動用珍謐 東閣近候平安
敎授之方 漸有頭緖 深以爲慰 而
信後日多 旋復憧憧 族從 日日
事 通計無全安時 煎灼之私 不容
盡喩 自餘衰悴 近爲秋務之所惱
噎滯虛眩 落席委度 阿季 月
餘阻音 摠之 無非悶慮者 而騷訛之
端 去益懍怖 令人放下心不得 生丁不
辰 奈何奈何 宣使行聲 果何間抵此耶
梧山叔 已赴任浹望 而當此艱危之時 貢
慮多於一賀耳
貴第尊少節一安 而婚期定在來月云 因
其時或可坐握耶 餘紙盡 忙不宣
丁未菊月初五 鼎燮從 拜謝

雙萬漢 爲慮萬端 來已數旬 而其
間 鬣子又爲本郡日兵所執 往還費四五
日 又未知無事度了耳
東閣 忙未上候 而或有新聞中可耳
雖万忙中 詳示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