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1월 11일, 李中華가 선친의 中祥에 편지를 보내준 상대방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는 편지
내용 및 특징
1906년 1월 11일에 李中華가 선친의 中祥에 편지를 보내준 상대방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자기 선친의 祥期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것 때문에 상대방의 아들이 영광스럽게도 찾아와준 일도 매우 감사한데, 편지까지 보내주니 더욱 위로가 되었다면서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이어서 근래 날씨가 고르지 못한데 상대방의 체후가 계절에 따라 손상이 없고 슬하의 자제들도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질긴 목숨이 죽지도 않아서 선친의 中祥이 다가온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하면서 한없이 애통한 마음이 들며,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남은 가족들이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는 것일 뿐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은 병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차도가 없고 약을 지어서 복용했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기필할 수 없으니, 근래 자기 가문의 상황은 큰 난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하였다. 그 다음 내용은 일본의 광산 채굴에 대한 이야기로, 일본 사람 10여 명이 광산을 채굴한다고 와서 丹砂 등지에서 일을 시작하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선조의 옛 여막과 산소를 어떻게 대대로 전하여 보호할 수 있겠느냐며 탄식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喪禮는 죽음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四禮가운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용어 역시 특별하게 사용하는데, 서신을 나타내는 용어로 書나 札 등의 용어를 쓰지 않고 疏를 쓴다. 수취인이 喪人일 경우 哀座下 ․ 哀座前 ․ 哀座 ․ 哀次 등의 용어를 쓰고,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을 孝廬․ 廬所 ․ 廬下 ․ 廬次 ․ 廬史라고 칭한다. 그리고 服人일 경우는 服座下 ․ 服座前 ․ 服座 ․ 服案 ․ 服史 등의 용어를 쓴다. 이는 모두 『禮記』와 『孝經』 등에 근거하여 ‘哀’자와 ‘服’자를 쓰는 것이다. 이외에도 발급인은 스스로를 罪人이라고 표현하고, 문두에 稽顙 ․ 稽顙再拜 ․ 頓首 ․ 頓首再拜 ․ 省禮 ․ 省式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용어들 역시 발급인 또는 수취인의 당시 상황이나 위계관계 등에 따라 구분하여 쓴다. 이 편지의 경우에는 발급인과 수취인이 모두 상중이기 때문에 서신을 나타내는 용어를 다 疏라고 썼다. 문두는 稽顙으로 시작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罪査下生이라고 칭하였다. 편지의 내용 중에서도 哀感 ․ 荒迷不備 등과 같은 표현은 상중에 있는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간찰은 일반적인 회문의 형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남아 있는 여백과 행간에 줄을 낮춰서 남은 사연을 적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