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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이규일(李圭一)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905.4713-20110630.006325700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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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규일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작성시기 1905
형태사항 크기: 22.7 X 47.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5년 이규일(李圭一) 서간(書簡)
이규일은 시력을 잃어버린 등의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그리고 자신의 조상인 덕봉 이진택의 남기신 글들을 목판에 새긴 지 이미 만 1년이 되어서야 책으로 만들에 되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작년 여름의 흉년 때문이며, 재력이 충분하지 못하여 널리 나누어주지 못했음을 알렸다. 상대 집안은 친분도 있고 『소회록』에 있는 김종호씨는 상대 가문의 선배인 것 같지만 누가 후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다만 1질 3책을 아이로 하여금 올리게 하니 받아 달라고 하였다. 즉 이 편지는 이진택과 상소 운동을 함께했던 인물들의 후손 집안에게 『덕봉집』을 나누어 부친 것이다.
김동현

상세정보

1905년 3월 1일, 이규일이 자신의 선조의 문집인 『덕봉집』을 보내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05년(광무 9) 3월 1일에 轢下 李圭一(1840-1905)이 보낸 편지이다. 이규일은 자가 克元, 본관이 慶州로, 野隱 李祐榮의 아들이다. 그는 1888년(고종 25)에 식년 생원시에 입격한 바 있다.
이규일은 시력을 잃어서 익숙하게 보던 서책도 잘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상황이 지난번 느른하여 떨치지 못했던 것보다 못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또 시력을 잃고 스스로를 버린 지경이 되었으니 차라리 남들에게 말하고도 싶지 않다고 하였다. 先祖의 遺稿를 목판에 새긴 지가 이미 만 1년이 되었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일을 마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작년 여름의 흉년으로 인해서 중간에 일을 멈췄기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또한 당초에는 卷帙을 이루어서 유림 諸家들로 하여금 선조의 높은 충정과 탁월한 절개가 오로지 某年의 義理에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하고 싶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재력이 충분하지 못하여 널리 頒帙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모년 의리란 壬午禍變 곧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사건을 바라보는 각 정파의 명분론을 의미하는데, 이규일의 선조인 德峯 李鎭宅은 남인의 입장에서 상소하여 사도세자의 伸寃을 주장하고 그 죽음과 관련된 노론 인물들의 처벌을 요구한 바 있다. 따라서 이 편지의 선조란 이진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상대는 契分이 자별하고, 또한 『疏會錄』에 있는 金宗鎬 씨는 상대 문중의 선배인 것 같지만 누가 嗣孫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다만 1帙 3冊을 아이로 하여금 올리게 하니 받아 달라고 하였다. 즉 이 편지는 이진택과 상소 운동을 함께했던 인물들의 후손가에게 『덕봉집』을 반질하면서 부친 것이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회문형식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오른쪽 여백과 행간에 이어서 내용을 기록했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4번에 걸쳐 줄을 바꾸거나 대두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5년 이규일(李圭一) 서간(書簡)

一散如雲 無計更合 此則不過別離之
苦 而兩白首同衰之歎 將何以相慰也 說
到于此 乃知隱侯之言 猶有所未盡也已
今年春又暮矣 伏詢卽玆花煦
靖候起居 燕超毖重 明牕榧几 觀玩崇
深 滿庭鵠鸞 一家鳧藻 俱獲吉象否 且
溸且禱 切切不任 弟 大老調將 僅免大何 而人
事 反常賤苦 種種貽憂 大是不盡分處
且司視失職 至若孰面書冊 尙此奈何 不下
向之苶然莫振者 今又眊然自廢 寧不欲向人
說道耳 先稿登木者 已至周歲 而今始訖役
蓋以昨夏歉毒 而中掇〖撤〗故也 初擬積成卷帙 使
吾林諸家 並知吾祖之危忠卓節 專在於
某年義理 而所恨者 事力不敷 頒視不廣
然而吾座 則契分自別 且疏會錄金宗
氏 似是貴門先輩 而未知其嗣孫之誰
某 故只以一帙三冊 使兒子奉呈 考領如何
餘眼眵神散 不能罄所懷 留不備 伏惟
乙巳三月初吉日 弟 李圭一 二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