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2월 22일, 이병칠이 족보를 편찬하는 일에 관하여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03년(광무 7) 2월 22일에 李秉七(1856-1936)이 보낸 편지이다. 이병칠은 雲嶽 李涵의 주손이다. 그의 자는 景斗이고 본관은 재령이다. 藥坡 李鉉發의 손자이자 李性浩의 아들이다.
먼저 겨를이 없어서 답장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했다. 이어 족보를 편찬하는 일이 매번 어그러진 것은 咸安派에서 기인하였으므로 지금 먼저 함안파 부분을 찍었다고 했다. 또한 靑龍派 사람의 어음이 150냥에 이르는데, 이 사람이 기어이 지급하지 않고서 뒷날을 기다리라고 하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수취인의 村에서 참봉 할아버지를 몰래 시켜 芝谷派 사람에게 13냥의 譜費만을 부과했다는 내용에 대해 성인이 5명이어서 冠錢을 배로 부과해야 하는 지곡파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유명무실한 일이라고 하면서 가벼이 이를 허락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끝으로 근일의 내력을 상대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는다고 했으며, 子寧이 일간 온다고 하고 할아버님이 6일 후에 왕림하시는데 또한 사정을 깊이 헤아리고 있으므로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李運七이 일간에 도착한다고 하는데, 名錢조로 말을 사서 타고 온다고 한다는 소식 등을 전했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으로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貴村, 下諒 앞에 글자를 비워두어 궐이 이루어졌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