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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최현식(崔鉉軾)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901.4713-20110630.006325700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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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최현식, 김병황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작성시기 1901
형태사항 크기: 22.7 X 42.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1년 최현식(崔鉉軾) 서간(書簡)
최현식은 객지에서 상을 당하니 심정이 더욱 애통하였고,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장례를 치르고 난 후였다고 하였다. 그는 관직을 얻기 위해 서울에 가서 오래 머무르다가 가을이 되기 전에 바로 돌아왔었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스스로 비웃었고 중도에 병에 걸려 상대를 찾아보지도 못하였다고 했다. 그는 말세에는 그칠 줄 아는 것이 욕을 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동생이 서울로 갔다가 겨우 도착하자마자 海上으로 갔는데, 상대의 집과 매우 가까웠음에도 바빠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으니 참으로 그 형에 그 동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가족들과 며느리의 안부를 전 하였다. 서울과 지방에서 가뭄을 겪고 있지만 몇몇의 군은 이러한 근심을 면한 것 같은데 과연 좋게 끝날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김동현

상세정보

1901년 6월 15일, 최현식이 상을 당해 서울에서 돌아온 심경을 전하고 근황을 알리며 가뭄에 대한 걱정을 써서 김병황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01년(광무 5) 6월 15일에 崔鉉軾金秉璜에게 보낸 편지이다. 최현식은 자가 敬蘇, 본관이 慶州이다. 北部都事崔晩喜의 아들이다. 그는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敬陵參奉 등에 임명된 바 있다. 최현식의 아들인 崔浚은 영감댁 김정섭의 딸과 결혼하였다. 따라서 최현식김정섭과 사돈간이다. 그가 이 편지에서 스스로를 ‘査下生’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보면 수취인은 그의 사장인 김병황으로 볼 수 있다.
최현식은 객지에서 喪制를 당하니 심정이 더욱 애통하였고,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장례를 치르고 난 후였다고 하였다. 그는 관직을 얻을 요량으로 서울에 가서 그 시끄러운 곳에 오래 머무르다가 가을이 되기 전에 바로 돌아왔었다고 하였다. 그는 이러한 신세를 자조하였다고 했고 중도에 병에 걸려서 상대를 찾아보지도 못하였다고 했다. 그는 末世에는 그칠 줄 아는 것이 욕을 당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고 하였다. 자신의 동생이 서쪽으로 갔다가 겨우 도착하자마자 海上으로 갔는데, 상대의 집과 매우 가까웠음에도 바빠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으니 참으로 그 형에 그 동생이라고 하였다. 나머지 식솔들은 모두 별탈이 없고, 며느리도 잘 지내고 있으므로 매우 다행하다고 하였다. 京鄕에서 가뭄을 공히 겪고 있지만, 몇몇의 郡은 이러한 근심을 면한 것 같은데, 과연 좋게 끝날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이 편지는 피봉의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單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봉이라는 것은 피봉이 하나인 것으로 피봉이 있는 경우와 피봉이 없는 경우가 있다. 피봉이 있는 경우도 내지가 단봉에 빈틈없이 딱 맞아 들어간다. 이 편지는 피봉이 있는 경우이다. 상단에 봉함처를 사용하고 있고 자신이 상을 당한 입장이므로 ‘省式謹封’이라고 적었으며 봉함처에는 ‘敬’이라고 적고 있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회문형식은 아니나 오른쪽 여백과 행간에 이어서 내용을 기록했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4번에 걸쳐 줄을 바꾸거나 대두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1년 최현식(崔鉉軾) 서간(書簡)

謹狀上
省式 頃與仲胤兄 同作洛旅 而一書偵
候 未副菲忱 罪悚多於瞻慕 伏惟庚炎
太碩人調將 一享萬康
省餘體韻 崇衛葆重 子舍僉兄 聯彩穩
侍 伏切區區溸祝之至 査下生 朞服人 客地
遭制 情界尤慟 而歸來 已奄隔厚壤矣 辜
負何言 所謂行 敢擬於展禽不畀之科
而東華軟塵 日上襟裾 自度疏拙不嫺 久
留於鬧熱之場 未秋逕還 較諸潘生 則
可云先見矣 自媿 復自嘲耳 中路嬰病 未
得歷拜軒屛 雖曰齎誠 誰肯信之哉 歸臥
衡廬 久後就痊 而兒婦之迎門笑語 僮
僕之薪水效勞 看作熱門之伺候 叔
世知止 亦似不辱 季君西鑣 菫祝 仍
作海上行 密邇仙庄 □忙戞過 人事
疎忽 果是眞兄弟也 伏切愧泚 餘
率並無它何 而婦阿 仍樣佳好 何慰如之
旱騷 京鄕同患 而鄙近幾郡 似免
此憂 未知能善終耶 餘不備狀上
下察
辛丑六月十五日 査下生 朞服人 崔鉉軾 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