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7월 22일, 김병황이 사돈의 대상에 가지 못할 사연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00년(광무 4) 7월 22일에 雲齋 金秉璜(1845-1914)이 보낸 편지이다. 김병황의 자는 渭瑞, 본관은 豐山이다. 同副承旨 洛厓 金斗欽의 손자이자, 金洛周의 아들이다. 이 편지의 수취인은 김병황의 죽은 사돈의 아들로 보인다.
먼저 김병황은 가을이 와도 아직 더위가 심하니 격조했던 회포가 더욱 안절부절 하였다고 했다. 이어 상대 형제와 同堂 여러 사람 및 슬하의 아들과 딸의 안부를 물었다. 김병황 자신은 다행히 별탈이 없으나 큰 며느리가 더위를 맞아 병이 잘났고 가운데 아들이 더위를 무릅쓰고 서쪽을 유람하였으므로, 쇠약한 자신의 회포를 초조하게 하였다고 했다. 冠童을 데리고 산과 亭子에 출입하면서 더위와 시름을 달래는 것은 근력이 예전만 못하고 더위를 먹을 염려가 있으므로 안타깝다고 하였다. 어느덧 사돈의 大祥이 임박하니 상대의 슬픈 마음을 알만 하겠다고 하였다. 김병황은 이때에 几筵에서 영결을 고하여야 하지만, 말[馬]이 죽고 탈것을 빌릴 길이 없다고 했다. 또한 아이를 대신 보내는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이해해 달라고 하였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도 일반적인 간찰의 형식을 따랐다.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남아 있는 여백과 행간에 줄을 낮춰서 적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