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11월 11일, 김병황이 상대방의 계씨가 북릉참봉에 제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음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00년(광무 4) 11월 11일에 雲齋 金秉璜(1845-1914)이 보낸 편지이다. 김병황의 자는 渭瑞, 본관은 豐山이다. 同副承旨 洛厓 金斗欽의 손자이자, 金洛周의 아들이다.
먼저, 김병황은 세모에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뜻밖에 편지를 받고 상대가 건승하고 상대 아들 형제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손녀가 무탈하게 지낸다는 등의 소식을 알게 되어 매우 기뻤다고 하였다. 자신은 늙으신 어버이께서 늘 瘧疾의 餘症이 남아 있어서 오랫동안 편치 못하시기에 매우 애가 탄다고 하였다. 또 가운데 아들이 고생을 실컷 겪고 온다고 해놓고 오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김병황은 근래 보건대 年少輩들이 出脚하자마자 모두 초심을 잃으니 크게 걱정되는 일이라고 하였다.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돌아오라고 하고 다시는 내보내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상대 季氏가 北陵에 제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出仕하지 않는 것이 규례라고 하였다. 그 사이에 반드시 다시 좋은 벼슬에 차출되었을 것인데 보내온 편지에서 언급하지 않았으니 지체되고 있기 때문이냐고 물었다. 축하의 말씀은 뒷날을 기다려 하지 않을 수 없겠다고 하였다. 끝으로, 상대의 가운데 아들이 河回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 있으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등의 사연을 적었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은 일반적인 회문의 형식에는 이르지 않았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