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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김이섭(金履燮)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900.1100-20110630.006325701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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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이섭, 김병황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900
형태사항 크기: 20.4 X 61.2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0년 김이섭(金履燮) 서간(書簡)
김이섭은 지난달 그믐 사이에 죽동으로 이주하여 매우 잘 지내나 날만 보내며 지나치게 많이 쓰는데 하나도 이룬 일이 없기에 탄식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서 평동축동, 류촌숙부의 안부를 전하였다. 의양달원, 군칠숙부가 차례로 와서 머물고 있고, 서울에 머물던 여러 어르신들은 아직 내려가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경현씨는 일전에 처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갔다고 하였다. 그리고 대감, 대감, 대감 등의 근황과 안부를 알렸다. 자신은 돌아갈 날짜를 아직 정하지 못했으나 몇 개월 머물며 세상이 변하는 형편을 지켜보겠다고 하였다.
김동현

상세정보

1900년 8월 19일, 김이섭서울에서의 근황과 주변 지인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부친인 김병황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00년(광무 4) 8월 19일에 金履燮(1876-1958)이 부친인 雲齋 金秉璜(1845-1914)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이섭은 자가 景厚, 본관이 豐山이다. 그는 洛厓 金斗欽의 손자인 김병황의 둘째아들이다. 후에 김병호에게 출계하였다.
김이섭은 지난달 그믐 사이에 竹洞으로 이주하였는데 거처와 출입이 극히 편안하고 생활도 예전처럼 하고 있다고 하였다. 다만 하릴없이 날을 보내고 있으면서 쓰는 것이 지나치게 많은데 하나도 이룬 일이 없기에 탄식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平洞畜洞 사람들은 모두 평안하고, 柳村 숙부도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영남의 知舊들이 점점 많이 올라오고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宜陽達源君七 숙부가 차례로 와서 머물고 있고, 서울에 머물던 여러 어르신들은 아직 내려가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景賢 씨는 일전에 처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갔다고 하였다. 河台가 무슨 일로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의 행동거지가 석연치 않기에 城中의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 하고 있다고 하였다. 김이섭은 이것이 벼슬자리를 얻으려는 계책이고 다른 일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趙台일본에 머물다가 그믐 전에 돌아올 것 같다고 하였고, 洪台는 아직 자신이 방문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그러므로 일간에 동지들과 가서 만날 것이라고 하였다. 김이섭은 자신이 돌아가는 날짜를 아직 정하지 못했으나 머물며 몇 개월을 기다리면서 세상이 변하는 형편을 지켜보겠다고 하였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4번에 걸쳐 줄을 바꾸어 존경을 표현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0년 김이섭(金履燮) 서간(書簡)

父主前 上白是

千里久曠之餘 便音俱阻 孺慕伏悵
靡時小弛也 因商裭 伏承下書 伏審
大母主壽韻 以瘧患添劇 在外焦慮 無
容盡達 而八耋筋力 如何堪耐 連試良
劑 趁卽收效否 便后多日 伏未審比凉
篤老愼候 間已復常 寢饍節無減
侍中氣體候 不以湯罏有損 連享萬
康 慈氏氣候康寧 膝下諸兄弟
穩侍 姪們充茁 伏慕區區 無任下誠
之至 子 前月晦間 移主于門內竹洞
居處出入 極爲便安 眠食姑依 而
但無事送日 所費大過 事無一成
伏歎伏歎 平洞畜洞節 俱安 柳村
亦依在耳 齋市差路 姑未之開仕路
無論此彼 去去益艱 而嶺下知舊 漸
益上來 未知甚故 宜歸達源君七
叔 次第來住 留洛諸丈 姑未下去 而
賢氏
日前 聞妻患 下去耳 河台之在
未知甚事 行止不明白 城中皆以爲疑
然是亦求仕之計 而非有他事也 聞於因封
時上來云 趙台住箚日國 似於晦前 還
來 而洪台 則姑無緊路 不得往訪 日間 將與
同志者 往見矣 歸期姑無定算 而旣爲
誤出 不得不留俟幾箇月 第觀時變
之何如 而拙手浩費 預爲伏罪耳
齋席 似於九月間就才 而透得 甚爲
未易 此將奈何 餘伏祝
氣候萬安 以副遠忱 不備上白
庚子八月十九日 子 履燮 上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