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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강육(姜錥)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99.4792-20110630.00632570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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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강육, 김병황
작성지역 경상북도 봉화군
작성시기 1899
형태사항 크기: 22.2 X 43.8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9년 강육(姜錥) 서간(書簡)
1899년(광무 3) 9월 8일에 강육이 사돈인 김병황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내준 편지를 받고서 상대방의 안부를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자신은 한 달 전에 손자를 잃었다고 하였다. 의 어미가 잘 있으며 첫돌에서 가 돌잡이하는 것을 그 아비와 같이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농사가 처음에는 풍년이 들 것 같았지만 성과가 없으니 내년 봄이 걱정된다고 하였다. 종묘의 대례(大禮)를 지금 윤허 받았으니 백성들의 경사이며 이로 인해 정국이 안정될 것이라 하였다. 이외에도 사촌들의 안부를 전하고 있다.
서진영

상세정보

1899년 9월 8일, 강육이 손자를 잃은 슬픔을 토로하고 종묘의 대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사돈인 김병황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99년(광무 3) 9월 8일에 石下 姜錥(1838-1910)이 사돈인 金秉璜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 강육봉화法田 출신의 학자로, 자는 和仲이고, 본관은 晉州이다. 그는 松西 姜橒의 손자이자, 白樵 姜夏奎의 아들이다. 肇慶廟參奉에 임명된 바 있다. 『풍산김씨세보』에 의하면 강육의 딸이 영감댁의 김이섭에게 시집간 것으로 나온다. 수취인은 강육 자신이 ‘査弟’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면 사돈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사돈은 김이섭을 계자로 들인 아버지인 김병호라고 볼 수 있으나 발급일인 1899년에는 이미 김병호는 사망하였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사돈은 김이섭의 생가 부친인 金秉璜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강육은 늘그막의 괴로운 회포가 가지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달포 전에는 새로 난 손자를 잃고 말았으니 이는 무슨 운수이며 무슨 액운이냐고 하였다. 의 어미가 잘 있는 것이 다행인데 첫돌에서 가 돌잡이한 것이 매우 사랑스러웠으나, 乃翁과 더불어 감상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사내아이와 딸아이의 輕重의 구별을 이에서 볼 수 있겠다고 하였다. 농사가 처음에는 자못 풍년이 들 것 같았으나 끝내 성과가 없으니 미리부터 내년 봄이 걱정된다고 하였다. 宗廟의 大禮는 백여 년 동안 겨를이 없었던 일이었는데 지금 하루아침에 윤허를 받았으니 이는 臣民의 막대한 경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로 인하여 정국이 안정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낙관론을 피력하였다. 從君 집안의 식구들은 별탈이 없지만, 從의 병이 오랫동안 낫지 않으므로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간찰의 경우에는 우측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남아 있는 여백과 행간에 줄을 낮춰서 적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풍산김씨세보』,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9년 강육(姜錥) 서간(書簡)

際玆 適有好期會 日望因便
奉晤於淑山楓菊之中矣
忽貴星踵門 以書代面 忙
手披讀 知其有啓駕旋止 世
上事 十常八九 不如意者 儘乎
其如是耶 此心悵恨 已無可量
而但惠我華緘 字字皆心貺 區區
感僕 亦不下於造次對穩也
以謹審重陽節
晨昏節宣 連衛康旺 梱裏郎
娘 一一純吉 何等仰慰 査弟 衰
境惡懷 可謂種種 月前 又不保新
孫 此何命數 此何運厄 日用攸
爲 祗是愁亂而已 奈何奈何 惟幸
珷母善在 珷也初度 其執戱
頗有可覓者 殊爲愛念 而恨不
與其乃翁鑑賞 男女輕重之別 於
此可見矣 奉呵奉呵 年事 始也 頗似
大地登豐者 終焉無其實 來春
爻象 預切恐悶處耳 閟宮大禮
百餘年未遑之事 今一朝蒙允 係
是臣民莫大之慶 或可因此 而時狀
之轉危爲安耶 從君家各節 別無
他故 而斗從所昚 尙爾綿綴 見甚爲
悶耳 早晩間 可贖之敎 預又爲感
幸 須從速力圖之 如何如何 餘神
撓掛漏 只此 不備謝上 統希
照下
己亥菊月重陽前日 査弟 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