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3월 4일, 이수악이 세를 거두는 문제를 함께 추진하는 일로 자신에게 와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99년(광무 3) 3월 4일에 于軒 李壽岳(1845-1927)이 세를 거두는 문제를 함께 추진하기 위해 자신에게 와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이수악은 자가 穉崇 (혹은 致崇), 본관이 재령으로, 李聃榮의 아들이다. 또한 盤窩 李光振의 증손이자, 梧窩 李相奎의 손자로, 바로 存齋 李徽逸의 주손이다. 저서에 문집이 있다. 수취인는 시기적으로 볼 때 李性浩나 李秉七 모두 될 수 있으나, 靖體라는 기체후 용어를 볼 때 이성호인 듯하다.
먼저 이수악은 이성호와 식솔들의 안부를 물었다. 이어 자신은 그저께 귀가하였는데 여독이 심하다고 했다. 上芳洞의 南·張 두 사람에게 貰를 거두는 일에 대하여 이미 官의 뎨김이 있었으니 조치를 늦출 수 없다고 했다. 남가와 장가는 일모실[日池]에 갔는데, 사람을 시켜 소장의 뎨김을 보여주면 그들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성호가 자신에게 오면 마땅히 함께 가서 두 사람을 불러 볼 것이니 부디 소홀히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검제[金溪]에서 패지를 물린 일은 다시 생각해 보아도 하지 않음만 못하였다고 했다. 우리의 門牌(문중 패지)를 물리지 않았다면 저쪽에서는 반드시 鼓變을 일으켜 싸움이 한층 격화될 것임을 앉아서도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石浦와 오말[梧村]에 다시 의논하여 草牌를 정지하였다고 했다. 이런 뜻을 村中에 통지해 달라고 하였다. 추신에서도 이 편지를 촌중에 회람시켜 달라고 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