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99년 이수악(李壽岳)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99.4777-20110630.003325700308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수악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작성시기 1899
형태사항 크기: 22.3 X 51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9년 이수악(李壽岳) 서간(書簡)
1899년(광무 3) 3월 4일에 이수악이 세를 거두는 문제를 함께 추진하기 위해 자신에게 와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이성호와 식솔들의 안부를 물었다. 이어 자신은 그저께 귀가하였는데 여독이 심하다고 했다. 상방동· 두 사람에게 세를 거두는 일에 대하여 이미 관의 뎨김이 있었으니 조치를 늦출 수 없다고 했다. 검제에서 패지를 물린 일은 다시 생각해 보아도 하지 않음만 못하였다고 했다. 우리의 문중 패지를 물리지 않았다면 저쪽에서는 싸움이 한층 격화될 것임을 앉아서도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석포오말에 다시 의논하여 草牌를 정지하였다고 했다. 이런 뜻을 마을 안에 통지해 달라고 하였다. 추신에서도 이 편지를 촌중에 회람시켜 달라고 했다.
김선주

상세정보

1899년 3월 4일, 이수악이 세를 거두는 문제를 함께 추진하는 일로 자신에게 와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99년(광무 3) 3월 4일에 于軒 李壽岳(1845-1927)이 세를 거두는 문제를 함께 추진하기 위해 자신에게 와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이수악은 자가 穉崇 (혹은 致崇), 본관이 재령으로, 李聃榮의 아들이다. 또한 盤窩 李光振의 증손이자, 梧窩 李相奎의 손자로, 바로 存齋 李徽逸의 주손이다. 저서에 문집이 있다. 수취인는 시기적으로 볼 때 李性浩李秉七 모두 될 수 있으나, 靖體라는 기체후 용어를 볼 때 이성호인 듯하다.
먼저 이수악이성호와 식솔들의 안부를 물었다. 이어 자신은 그저께 귀가하였는데 여독이 심하다고 했다. 上芳洞· 두 사람에게 貰를 거두는 일에 대하여 이미 官의 뎨김이 있었으니 조치를 늦출 수 없다고 했다. 가와 가는 일모실[日池]에 갔는데, 사람을 시켜 소장의 뎨김을 보여주면 그들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성호가 자신에게 오면 마땅히 함께 가서 두 사람을 불러 볼 것이니 부디 소홀히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검제[金溪]에서 패지를 물린 일은 다시 생각해 보아도 하지 않음만 못하였다고 했다. 우리의 門牌(문중 패지)를 물리지 않았다면 저쪽에서는 반드시 鼓變을 일으켜 싸움이 한층 격화될 것임을 앉아서도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石浦오말[梧村]에 다시 의논하여 草牌를 정지하였다고 했다. 이런 뜻을 村中에 통지해 달라고 하였다. 추신에서도 이 편지를 촌중에 회람시켜 달라고 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9년 이수악(李壽岳) 서간(書簡)

拜上.
阻乍日遲, 謹詢比,
靖體一衛, 庇下俱吉, 旋切
溯溯. 族從, 昨昨尋巢, 憊惱
殊甚耳. 上芳洞
二人許收貰, 旣有
官題, 嚴決究竟, 不可緩
也. 二哥往日池, 使人示其狀
題, 其言云何?
座下日間, 來臨鄙所, 則當偕
往, 招見二人, 幸勿泛緩如何?
金溪還牌事, 更思之, 不如
不爲, 蓋不還吾門門牌, 則
彼邊必將鼓發狂鬧, 一番
層激, 坐可料矣. 更議於
吾邨, 草牌停止, 此意
通于村中如何? 都留, 不備, 惟
照亮.
己亥三月初四日, 族從 壽岳 拜拜.

此紙輪布于村中,
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