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99년 이수악(李壽岳)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99.0000-20110630.003325700148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수악
작성시기 1899
형태사항 크기: 22 X 44.7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9년 이수악(李壽岳) 서간(書簡)
1899년(광무 3) 7월 29일에 이수악이 객지에서 자신이 얻은 성과를 전하고 소회 참석 여부 등을 묻기 위해 수취인 미상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근래 오랫동안 격조했는데 날씨가 무덥고 비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평소보다 더욱 소식이 궁금하였다고 했다. 이런 차에 이성호의 편지를 받게 되니 매우 위안이 되고 모친을 모시고 있는 이성호 및 그 형제가 평안하다는 소식을 살피게 되어 더욱 안심이 되었다고 했다. 이수악 자신은 오랫동안 객지에 있다가 돌아와 피곤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고, 식구들도 평안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가 일정치 않다고 했다. 한 번의 대면으로 3년 동안이나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주장을 타파하였으니, 대단한 기력이 있지 않고서도 기량이 이와 같으므로 도리어 한 번 웃을 만하다고 했다.
김선주

상세정보

1899년 7월 29일, 이수악이 객지에서 자신이 얻은 성과를 전하고 소회 참석 여부 등을 묻기 위해 수취인 미상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99년(광무 3) 7월 29일에 于軒 李壽岳(1845-1927)이 객지에서 자신이 얻은 성과를 전하고 소회 참석 여부 등을 묻기 위해 수취인 미상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수악은 자가 穉崇 (혹은 致崇), 본관이 재령으로, 李聃榮의 아들이다. 또한 盤窩 李光振의 증손이자, 梧窩 李相奎의 손자로, 바로 存齋 李徽逸의 주손이다. 저서에 문집이 있다. 수취인은 시기적으로 볼 때, 李性浩李秉七 모두 될 수 있으나, 이수악이 스스로를 "족종"이라고 칭한 것으로 볼 때, 이성호인 것으로 보인다.
먼저 근래 오랫동안 격조했는데 날씨가 무덥고 비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평소보다 더욱 소식이 궁금하였다고 했다. 이런 차에 이성호의 편지를 받게 되니 매우 위안이 된 데다, 모친[堂幃]을 모시고 있는 이성호 및 그 형제가 평안하다는 소식을 살피게 되어, 더욱 안심이 되었다고 했다. 이수악 자신은 오랫동안 객지에 있다가 돌아오매 피곤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고, 식구들도 평안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가 일정치 않다고 했다.
한 번의 대면으로 3년 동안이나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주장을 타파하였으니, 대단한 기력이 있지 않고서도 기량이 이와 같으므로 도리어 한 번 웃을 만하다고 했다. 道의 疏會에 이성호가 가려하는지, 그리고 得之傅若도 함께 갈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자신의 아들도 2일에 출발하려 하니 余峴에서 만나려면 그날을 놓치지 말라고 했다. 首齋任은 필시 호가 星湖이고 자가 炳彦인데, 柄이라 한 것은 잘못 쓴 것이라고 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9년 이수악(李壽岳) 서간(書簡)

近阻久, 暑且霖, 懸念
倍常. 卽奉惠問, 慰
豁可量. 以審比者,
堂幃奉省萬衛,
棣床連相, 尤何等浣
釋. 族從, 久客歸來, 憊
圉難振, 眷累亦安, 未無
常, 憐悶奈何? 第一番
行對, 打三年嘵嘵之口,
亦非有大段氣力, 伎倆
固如是, 還可一笑耳.
道疏之會, 賢史擬行
得之, 傅若無幷鑣之
意否? 家督, 將以初二日發
去, 以相遌於余峴, 則須勿
失右日, 如何? 首齋任, 必是
星湖炳彦, 而炳字木邊, 似
誤書耳. 不宣. 惟
照在.
己亥七月念九, 族從 壽岳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