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7월 29일, 이수악이 객지에서 자신이 얻은 성과를 전하고 소회 참석 여부 등을 묻기 위해 수취인 미상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99년(광무 3) 7월 29일에 于軒 李壽岳(1845-1927)이 객지에서 자신이 얻은 성과를 전하고 소회 참석 여부 등을 묻기 위해 수취인 미상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수악은 자가 穉崇 (혹은 致崇), 본관이 재령으로, 李聃榮의 아들이다. 또한 盤窩 李光振의 증손이자, 梧窩 李相奎의 손자로, 바로 存齋 李徽逸의 주손이다. 저서에 문집이 있다. 수취인은 시기적으로 볼 때, 李性浩나 李秉七 모두 될 수 있으나, 이수악이 스스로를 "족종"이라고 칭한 것으로 볼 때, 이성호인 것으로 보인다.
먼저 근래 오랫동안 격조했는데 날씨가 무덥고 비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평소보다 더욱 소식이 궁금하였다고 했다. 이런 차에 이성호의 편지를 받게 되니 매우 위안이 된 데다, 모친[堂幃]을 모시고 있는 이성호 및 그 형제가 평안하다는 소식을 살피게 되어, 더욱 안심이 되었다고 했다. 이수악 자신은 오랫동안 객지에 있다가 돌아오매 피곤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고, 식구들도 평안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가 일정치 않다고 했다.
한 번의 대면으로 3년 동안이나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주장을 타파하였으니, 대단한 기력이 있지 않고서도 기량이 이와 같으므로 도리어 한 번 웃을 만하다고 했다. 道의 疏會에 이성호가 가려하는지, 그리고 得之와 傅若도 함께 갈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자신의 아들도 2일에 출발하려 하니 余峴에서 만나려면 그날을 놓치지 말라고 했다. 首齋任은 필시 호가 星湖이고 자가 炳彦인데, 柄이라 한 것은 잘못 쓴 것이라고 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