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2월 12일, 권세연이 일전에 상대에게 받은 편지 말미에 적힌 어떤 일에 관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98년(광무 2) 2월 12일에 星臺 權世淵(1836-1899)이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 권세연은 자가 祖源이고, 본관이 安東으로, 權鎭夏의 아들이다. 그는 생원시에 입격한 바 있고, 崇陵參奉에 임명된 바도 있다. 그는 한말 의병으로 倡義大將이 되어 일제에 대항하였다.
권세연은 偏側(부모 중 한 분이 돌아가시고 남은 한 분을 가리키는 듯함)이 늘 위태로우시고 아프지 않은 식구들이 없으므로 애가 타고 가련하다고 하였고, 자신도 허약한 체질에 나이를 한 살 더 먹고서 비록 자리에 앓아눕지는 않았으나 조금도 재미가 없다고 하였다. 권세연은 돌아가신 스승님의 几筵이 이미 철해졌으니 의지할 바 없는 자의 애통함이 갈수록 심해진다고 하였다. 상대가 편지 말미에서 언급했던 일은 자신이 이에 앞서 湖上과 왕복하여 남김없이 갖추어 진술하였고, 낙동강 東南 쪽의 여러 사우들과 만나서 힘써 논쟁하였으니 대단한 풍파가 일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崇兄에게 편지를 쓰라는 상대의 생각은 진실로 훌륭하지만 이 사람의 집요함은 자신이 回聽(마음을 되돌려서 말을 듣게 함)하게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냥 두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상대의 의향을 물었다. 끝으로 자신이 늦봄에 陶谷으로 갈 듯한데, 상대의 집과 멀지 않으므로 혹 이로 인해 만날 수 있다면 매우 다행할 것이라고 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간찰의 경우에는 우측에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시작하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남아 있는 여백에 적었고, 행 사이에도 줄을 낮춰서 기록했다.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