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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이만호(李晩好)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97.4717-20110630.003325700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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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호, 이성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97
형태사항 크기: 24.5 X 44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7년 이만호(李晩好) 서간(書簡)
1897년(광무 1) 3월12일에 이만호가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사돈인 이성호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지난번에 쓴 편지를 부치지 못하여 격조하였기에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였다고 했다. 이어 꽃바람 부는 3월에 이성호 등 가족들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특히 며느리가 보살핌을 받아 잘 지내고 있는지도 물었다. 이만호의 부인인 풍산류씨는 차도를 보이고 있으나, 새로 관례를 올린 아이가 인사를 하기 위해 외가에 갔다가 병을 얻어 위급하여 이중한이 들어간 지 이미 수십 일이 되었다고 했다. 이제 겨우 살 방도를 얻었으나 비쩍 마르고 뼈만 나와서 회복할 기약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또 이중한은 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멀리 달아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근심의 구덩이에 처해 있다고 했다.
김선주

상세정보

1897년 3월 12일, 이만호가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사돈인 이성호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97년(광무 1) 3월 12일에 李晩好(1845-1906)가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사돈인 李性浩(1839-1923)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만호는 자가 學老, 본관이 진성으로, 李彙輔의 아들이다. 그의 둘째아들인 李中翰이성호의 장녀와 혼인하였다. 이성호는 자가 惟聖, 본관이 재령으로, 藥坡 李鉉發의 아들이다. 곧 雲嶽 李涵의 주손이다.
먼저 지난번에 쓴 편지를 부치지 못하여 격조하였기에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였다고 했다. 이어 꽃바람 부는 3월에 이성호 등 가족들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특히 며느리가 보살핌을 받아 잘 지내고 있는지도 물었다. 이만호의 부인인 풍산류씨는 차도를 보이고 있으나, 새로 관례를 올린 아이가 인사를 하기 위해 외가에 갔다가 병을 얻어 위급하여 이중한이 들어간 지 이미 수십 일이 되었다고 했다. 이제 겨우 살 방도를 얻었으나 비쩍 마르고 뼈만 나와서 회복할 기약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또 이중한은 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멀리 달아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근심의 구덩이에 처해 있다고 했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으로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靖中과 같은 단어에서 줄을 바꾸는 형식으로 상대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7년 이만호(李晩好) 서간(書簡)

査兄靖座下

頃者裁書 未付便音 間闊
瞻誦 何等小弛于中 伏
惟花風
靖中體上萬衛 視下長第勻
宜 吾家人果無向時攸害 而
亦荷庇善過否 伏溸區區 査弟
劣狀無足言 荊憂才得蔗域
而新弁之兒 月前念間 爲候渠祝
庭行 而得病危劇之報 專人而來
仲豚入去 已至數十日 僅得生道 而
見今戌削骨立 蘇完無期 憐
憐悶悶 仲豚以輪眼 合眼爲苦
便作憂窠 令人遠走 而不可有
耳 餘適聞三碧堂歸客 在村
座 借楮 暫此潦草 不備 伏

丁酉三月十二日 査弟 李晩好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