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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이교영(李敎英)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95.4717-20110630.003325700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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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교영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95
형태사항 크기: 21.5 X 44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5년 이교영(李敎英) 서간(書簡)
1895년(고종 32) 1월 23일에 이교영이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심부름꾼이 와서 상대와 아드님의 건강이 괜찮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다만 서암으로의 이주는 지금에 이르러 괜찮은 방책을 얻게 되었으나 흉년에 모든 일들을 어떻게 조치하겠느냐고 하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을 표했다. 자신은 어린 손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조금도 재미가 없으나 조카딸이 근래 혼례를 하였고 여러 며느리도 무탈한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조카인 이종봉이 오랫동안 문안을 드리지 못했으므로 그리로 보냈는데, 다만 봄추위가 매섭고 험한 길을 갔다가 돌아와야 하므로 미리 염려된다고 했다. 김상사의 일은 가슴 아프다고 했다. 봄기운이 무르익어가니 한번 왕림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추신에서는 보내준 물고기에 대해 감사하다고 했고 대추 1말을 올린다고 했다.
김선주

상세정보

1895년 1월 23일, 이교영이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95년(고종 32) 1월 23일에 一愚 李敎英(1833-1895)이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 이교영은 懶隱 李東標의 둘째아들인 杜陵 李濟兼의 주손이며, 靜窩 李得魯의 아들이다. 재령 이씨 충효당 주손인 李性浩의 사위 가운데 李鍾鳳이 있는데, 이종봉이득로의 친손자이다. 따라서 이종봉이교영의 조카이다. 수취인은 시기적으로 이성호인 것으로 보이지만 확신할 수 없다. 이교영1895년 2월 3일에 돌아갔으니, 이 편지는 사망하기 10일 전에 쓴 것이 된다. 그는 蔭仕로 출사하여 여러 지방관을 역임한 바 있다.
먼저 심부름꾼이 와서 상대와 아드님의 건강이 괜찮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다만 棲菴으로의 이주는 지금에 이르러 괜찮은 방책을 얻게 되었으나 흉년에 모든 일들을 어떻게 조치하겠느냐고 하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을 표했다. 자신은 어린 손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조금도 재미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조카딸이 근래 成婚하였고 여러 며느리도 무탈한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조카인 이종봉이 오랫동안 문안을 드리지 못했으므로 그리로 보냈는데, 다만 봄추위가 매섭고 험한 길을 갔다가 돌아와야 하므로 미리 염려된다고 했다. 孔巖 金庠士의 일은 가슴 아프다고 했다. 봄기운이 무르익어가니 한번 왕림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시세에 따라 踏驗하여 표를 받게 되면 매우 다행할 것이라고도 했다. 추신에서는 보내준 물고기에 대해 감사하다고 했고 대추 1말을 올린다고 했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으로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體候 등과 같이 상대방을 높이는 부분에서 행을 바꾸고 높이 적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5년 이교영(李敎英) 서간(書簡)

伻來, 承審
體候連護萬衛,
允兄穩侍, 仰慰萬萬, 而但移
棲菴, 到今得計, 然而饑歲
凡百, 何以措處, 秪切仰慮. 弟,
合三謝歸, 雖有執意, 未免迂闊,
且人家, 而無一穉孫, 了無滋況, 旋
切憂懼. 惟以姪嬌, 近經成婚, 諸婦
無頉, 爲幸耳. 姪兒, 久闕修候
故命送, 但春寒甚峭, 涉險往還, 豫
爲悶慮. 孔巖金庠事, 可痛, 幸
須偕往, 督撥雖執出, 從時價踏驗, 受
表, 幸甚幸甚. 春氣方闌, 一者枉駕,
仰企仰企. 留不備謝上.
乙未正月二十三日, 弟 李敎英 拜二.

惠魚感銘耳.
丹棗一斗, 汗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