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8월 26일, 류도석이 녹도에서의 유배가 풀려 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94년(고종 31) 8월 26일에 海史 柳道奭(1828-1908)이 보낸 편지이다. 류도석은 자가 太弼이고 본관이 豐山이다. 류성룡의 아들인 修菴 柳袗의 9대 종손이고, 洛坡 柳厚祚의 손자이며, 溪堂 柳疇睦의 아들이다. 류후조가 재상의 반열에 이르자, 蔭仕로 童蒙敎官이 되었고, 후에 慈仁縣監에 임명되었다. 자인 현감으로 재직할 때에, 역모에 가담한 혐의로 14년 동안 녹도에 유배되어 고초를 겪은 바 있다. 그의 부친인 류주목은 老圃 朴光錫의 아들인 朴基載의 사위이며, 영감댁 洛厓 金斗欽은 노포의 사위이다.
류도석은 자신이 恩命을 받아 사면되어 돌아온 것이 기대 밖의 일이었다고 하였다. 또한 칠십에 가까운 자신이 매우 먼 길을 달렸는데도 병이 나지 않았으니, 이 모든 것이 은택이라고 하였다. 또한 식솔들이 별탈이 없으니 다행하다고 하였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느끼는 감회를 진정시키기 어렵다고 하였다. 아이가 근래 산골짜기로 갔는데, 東學의 소요가 날마다 들끓고 있으니 일각이라도 머물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는 회문형식은 아니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고 연월일과 발급인 인명을 행간에 기록했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6번에 걸쳐 줄을 바꾸거나 대두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