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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이만호(李晩好)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91.4717-20110630.00332570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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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호, 이성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91
형태사항 크기: 21.3 X 3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1년 이만호(李晩好) 서간(書簡)
1891년(고종 28) 1월에 이만호가 사돈인 이성호에게 보낸 편지이다. 궁금하던 즈음에 이성호의 어린 종이 집으로 와서 이성호의 편지를 받았는데, 이성호 형제와 이병칠 형제가 다복하며 식구들도 고루 좋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과거 날짜가 머지않은 상황에서 응시자들이 모두 분주한 상황인데, 자신과 같은 퇴물은 그저 군침만 흘리고 있다고 했다. 이성호가 편지 말미에서 언급한 경주 여행은 도모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하면서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도리어 아니 들은 만 못하다고 했다. 말을 매매하는 일은 갑자기 도모할 수 없기 때문에 이성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닭실바래미로 문상을 가려고 하므로 이만 줄인다고 했다.
김선주

상세정보

1891년 1월 14일, 이만호가 자신의 근황과 과거 소식 등을 알리기 위해 사돈인 이성호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91년(고종 28) 1월에 李晩好(1845-1906)가 사돈인 李性浩(1839-1923)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만호는 자가 學老, 본관이 진성으로, 李彙輔의 아들이다. 그의 둘째아들인 李中翰이성호의 장녀와 혼인하였다. 이성호는 자가 惟聖, 본관이 재령으로, 藥坡 李鉉發의 아들이다. 곧 雲嶽 李涵의 주손이다.
먼저 궁금한 마음이 간절하던 즈음에 이성호의 어린 종이 집으로 온 것으로 인해 매우 귀한 신년 소식이 담긴 이성호의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봄비가 막 그친 이때에 이성호 형제가 만왕하고 이병칠 형제가 다복하며 식구들도 고루 좋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자신은 여전하지만 흰머리와 뿌옇게 보이는 증세는 작년보다 심하여졌다고 했다. 며느리도 다행히 별탈은 없다고 했다.
과거 날짜가 머지않은 상황에서 응시자들이 모두 분주한 상황인데, 자신과 같은 퇴물은 그저 군침만 흘리고 있다고 했다. 이성호가 편지 말미에서 언급한 慶州 여행은 도모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하면서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도리어 아니 들은 만 못하다고 했다. 말을 매매하는 일은 갑자기 도모할 수 없기 때문에 이성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닭실바래미로 문상을 가려고 하므로 이만 줄인다고 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1년 이만호(李晩好) 서간(書簡)

方庸懸仰之際 小奚踵門 卽
承惠翰 新年消息 孰大
於是 感慰難量 因謹審春
雨纔收
棣床體度 崇衛萬旺 允房聯
侍多福 大都亦勻慶 仰慰萬萬
査弟 一如前狀 而鬢霜眼霧
甚於昨年 是亦例也 憐歎何喩 婦
阿幸無頉 而例待差緩 甚可
怪也 科期不遠 擧者皆有奔
忙底狀 而至若場屋退物 只
流涎而已 所謂兒輩 似有妄意
自有挽止者存 何妨如意 尾
東都之行 因此圖之甚好 而此
不可容易之事 還不如不聞耳
鬣事 今日出外 歸期似五六日矣
雖云見價無不小 亦不可猝乍間可圖也
以此未得仰副 可恨可恨 方發
喪之行 倚馬潦草 不備謝禮 伏惟
尊札
辛卯元月十四日 査弟 李晩好 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