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6월 9일, 이만수가 중매를 하기 위해 이성호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86년(고종 23) 6월에 李晩洙가 중매를 하기 위해 李性浩(1839-1923)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만수는 본관이 眞城으로, 퇴계 선생의 후손이다. 그는 의성김씨 문중의 浪坡 金鎭林의 첫째사위이다. 그런데 김진림의 둘째사위가 재령이씨 충효당 주손인 이성호이다. 따라서 이만수는 이성호의 손윗동서가 된다. 이 편지의 내용을 봤을 때 수취인도 이성호라고 확정할 수 있다.
이만수는 병으로 칩거하면서 괴로움 속에 있는 가운데 일전에 義城使君 형도 급병으로 돌아갔기에 비통하다고 했다. 또한 식구들도 자주 아프다고 하므로 괴롭다고 했다. 지난번 이성호 딸의 婚說은 자신이 돌아와서 탐문해봤더니 저쪽 집안에서 이미 오래전에 달리 정한 혼처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族弟인 李晩好 집안에 신랑감인 李中翰이 있는데, 그 집안의 범절이 전에 언급됐던 곳보다 더 좋다고 했다. 또 15세의 이 신랑감은 마을에서 칭술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여러 군데에서 요구하여 그 집안에서도 바야흐로 혼처를 정하려고 하는데, 신랑감의 준수함과 그 집안의 여유로움이 탐이 난다고 했다. 비록 신랑감이 次子라고는 해도 제격이라고 여겨져서 이성호 딸에 대해서 누누이 언급하였다고 했다. 그러자 저쪽 婚主도 의향이 없지 않다고 하면서 그저 자기 말만 믿고 회시해 달라고 했다. 또한 이만호 집안에서 추수 때에 예식을 치러 주려고 한다고 하면서, 헤아려서 회시해 달라고 했다. 끝으로 商人에게 당겨쓴 어떤 물건을 이 종[奴]이 돌아갈 때에 부쳐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 편지는 회문식은 아니다. 다만 처음 내용을 쓰고, 여백이 없자 다시 처음에 비워 둔 공간에서부터 줄을 낮춰서 행 사이에 내용을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