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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황기룡(黃基龍) 위장(慰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85.4817-20110630.009025700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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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위장
내용분류: 종교/풍속-관혼상제-위장
작성주체 황기룡
작성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작성시기 1885
형태사항 크기: 24 X 39.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천전 의성김씨 제산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5년 황기룡(黃基龍) 위장(慰狀)
1885년 8월 10일에 황기룡이 보낸 위문편지이다. 뜻밖에 오늘 갑자기 상대방 어버이의 부고를 받았다는 말과 함께 상대방에게 장례를 잘 치렀는지에 대해 묻고, 부디 슬픔을 잘 억제하여 효를 상하게 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기를 당부하였다. 직접 가서 조문해야 하지만 잡다한 일에 빠져서 가지 못하니 양해를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은 삼년상을 겪은 데다 삼종형인 시중씨의 상도 당하여 슬프고 한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부디 상중에 몸을 잘 지탱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위문편지를 마무리하고 있다.
서진영

상세정보

1885년 8월 10일, 황기룡이 상대 어버이의 부음을 듣고 위로하기 위하여 보낸 위문편지
내용 및 특징
1885년(고종 22) 8월 10일에 湖隱 黃基龍(1832-1906)이 보낸 위문편지이다. 황기룡은 자가 敬集이고 본관이 昌原이다.
먼저 황기룡은 상대의 어버이의 춘추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병환이 위중하다고 들은 것도 아닌데 어찌 오늘 갑자기 부음이 이를 줄 알았겠느냐고 하였다. 또한 상대의 지극한 효성에 감응되어 반드시 신명의 보우가 있었을 것인데, 하늘은 어찌 이리도 무심하여 갑자기 이런 지경에 이르렀냐고 하였다. 이어 初終葬禮를 능히 유감이 없이 잘 치렀는지 묻고 평소 상대의 순수하고 지극한 효성으로 반드시 정해진 예법을 넘어 슬퍼하였을 것이라고 하면서 부디 슬픔을 잘 억제하여 효성으로써 효성을 상하게 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할 것을 당부하였다. 황기룡은 깊은 知己의 정과 독실하게 서로 아꼈던 마음으로, 姓은 비록 다르나 一家와 다름없는 사이로 비기기까지 하였으나 사는 곳이 너무나 멀어 지금까지 거의 10년 동안 만나지 못하였다고 했다. 또한 편지로 서로 안부를 묻는 것도 뜻대로 하기가 어려웠으므로, 吉凶 등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고 하였다. 이제 부음을 받고서 마땅히 직접 나아가 정성을 표하여야 하지만 쓸데없는 일에 골몰되어 그러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고 하였다. 또 자신은 丙年 이래로 삼년상을 치르면서 喪慘을 실컷 겪었고, 1883년(고종 20) 8월에는 三從兄인 時仲氏를 잃었다고 하면서 매우 애통하고 한스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상대가 상중에 몸을 잘 지탱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喪禮는 죽음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四禮가운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서간문 가운데 위장은 일반 서간에 비해 특별한 서식을 갖추고 있다. 즉 일반 서간에 비해 글씨를 작게 쓰고 초서가 아닌 정서를 쓰며 지면의 상단을 확연하게 띄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용어 역시 특별하게 사용하는데, 서신을 나타내는 용어로 書나 札 등의 용어를 쓰지 않고 疏를 쓴다. 또 수취인이 喪人일 경우 哀座下 ․ 哀座前 ․ 哀座 ․ 哀次 등의 용어를,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을 孝廬 ․ 廬所 ․ 廬下 ․ 廬次 ․ 廬史라고 칭한다. 그리고 服人일 경우는 服座下 ․ 服座前 ․ 服座 ․ 服案 ․ 服史 등의 용어를 쓴다. 이는 모두 『禮記』와 『孝經』 등에 근거하여 ‘哀’자와 ‘服’자를 쓰는 것이다. 이외에도 발급인은 스스로를 罪人이라고 표현하고, 문두에 稽顙 ․ 稽顙再拜 ․ 頓首 ․ 頓首再拜 ․ 省禮 ․ 省式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용어들 역시 발급인 또는 수취인의 당시 상황이나 위계관계 등에 따라 구분하여 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5년 황기룡(黃基龍) 위장(慰狀)

基龍 頓首再拜言 禮書之外 復夫何言 春秋非甚隆高 病
患未聞沈重 而豈料今日 遽及哀音耶 竊意誠孝所感
必有神明保佑 而天胡不弔 遽至於斯也 當此巨創 初終壙
毳之節 能免無憾 有所自盡否耶 以平日純至之孝
拚擗哀毁之節 想必過度矣 望須節愛〖哀〗順變 無至以
孝傷孝之地 如何 基龍 之先世契分 非但一室之人 又有一
日之雅 則知己之深 相愛之篤 妄擬異姓天倫 而落落千里 遲
遲一面 殆至十年于玆矣 則不惟南北之夐絶 每緣郵
遞之無憑 以書相問 亦難如意 吉凶榮辱 何從而
探實也 今承實音 卽當匍匐 以伸微悃 而汨
沒冗故 未質心香 雖見訶斥 何敢辭也 事契何等
甚重 而辜負至此 豈敢以私冗細故 自文於難宥之
罪哉 然而大孝之雅量弘度 不較此萬無似之人
特垂曲恕於實告之地 則豈非不遺之盛德乎 基龍
則自以來 三年草土 備經無限喪慘 而癸未八月 又
哭三從兄時仲氏於積年之憂患 門運之衰敗 一何至
此 慟恨慟恨 餘 惟冀
哀體候以峕萬支 不備疏式 伏惟
哀照 謹拜候疏
乙酉八月初十日 契弟 黃基龍 疏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