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4월 16일, 박해령이 상대 아우의 상사를 위로하기 위해 김병황에게 보낸 위문편지
내용 및 특징
1876년(고종 13) 4월 16일에 朴海齡이 洛厓 金秉璜(1845-1914)에게 보낸 慰狀이다. 먼저, 박해령은 김병황의 아우 金秉璿이 원통하게 돌아갔으니 매우 비참하다고 하였다. 김병황의 아우가 몇 년 동안이나 오랜 병을 앓고 있었음을 알았으나 연령이 아직 한창이고 체질이 굳건한 것을 믿고 있었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될 줄을 알았겠느냐고 하였다. 이어, 김병황 및 그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박해령 자신은 아직까지 실낱같은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고 했고, 어버이가 오랫동안 쇠약하시므로 애타는 마음을 형용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작년 가을에 참혹한 소식을 들은 후로 늘 위문편지를 보내고 싶었으나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살고 있기에 이제야 하니 죄송하다고 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간찰은 일반적인 회문의 형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남아 내용을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