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1월 26일, 류기영이 상대를 위로하고 이양선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자신의 사위인 김병황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6년(고종 13) 1월 26일에 鶴下 柳驥榮(1825-1880)이 자신의 사위인 雲齋 金秉璜(1845-1914)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 류기영은 자가 士雍이고, 본관이 豐山으로, 厓雲 柳致睦의 손자이다. 사마시에 입격하였고, 관직으로는 佐郞을 지냈다. 수취인 김병황은 자가 渭瑞, 본관이 豐山이다. 同副承旨 洛厓 金斗欽의 손자이자, 金洛周의 아들이다.
먼저 류기영은 일전에 權吏 편에 부친 편지는 아직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그 후 여러 날이 지났는데, 査丈이 萬康하시며 복중에 있는 김병황이 건승하며 慶이 어미는 어린 것을 데리고 잘 지내고 있으며 가족들도 고루 좋은지 안부를 물었다. 어느덧 季氏인 金秉璿의 祥日이 임박하였으니 마음을 안정시키기 어려울 것인데, 연래로 쇠약해진 몸으로 어떻게 감당하시느냐고 하면서 자신의 비감이 더욱 간절해진다고 하였다. 류기영은 모든 사무가 봄을 맞아 더욱 바빠지고 있으니 근래의 상황이 苦海에 빠져 있다고 하였다. 이양선 사태에 대해서 근래 확실한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어떤 이는 약간 물러났다고 하고 어떤 이는 항상 머물러 있다고 한다고 하였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진위를 판단할 수 없으나 이것이 어찌 작은 근심거리이겠느냐고 하였다. 방비 대책을 미리 요리해야 하는데, 이미 재력이 모자라고 智謀가 없으니, 그저 속수무책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인사를 하고 겸하여 위문을 하기 위해 보냈던 자신의 아들을 오늘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는 아들의 외숙이 와서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은 일반적인 회문의 형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우측에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여백과 행간에 사연을 이어 적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