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윤5월 22일, 류기영이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협지에 쓴 어떤 일을 부탁하기 위해 자신의 사위인 김병황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6년(고종 13) 윤5월 22일에 鶴下 柳驥榮(1825-1880)이 자신의 사위인 雲齋 金秉璜(1845-1914)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 류기영은 자가 士雍이고, 본관이 豐山으로, 厓雲 柳致睦의 손자이다. 사마시에 입격하였고, 관직으로는 佐郞을 지냈다. 수취인 김병황은 자가 渭瑞, 본관이 豐山이다. 同副承旨 洛厓 金斗欽의 손자이자, 金洛周의 아들이다.
먼저 류기영은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더위가 이처럼 혹심하니 비록 병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이라도 안부가 매우 궁금하였다고 하였다. 이어 근래 더위에 査丈이 건강을 상하지 않았으며 김병황도 건승하며 慶이 어미도 어린 것을 데리고 잘 지내고 있으며 온 가족들도 고루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류기영 자신은 근래 瘧疾을 세 차례나 치르고 나서 식음을 전폐하고 기력을 수습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집사람이 泄症으로 앓아누워 있고, 며느리도 학질로 신음하고 있으며, 온 집안의 우환거리가 가지가지 정신을 괴롭히고 있으므로 調病에 구애를 받고 있다고 했다. 끝으로 류기영은 마침 부득이한 일이 있어 夾紙로 써서 알렸으니 상세히 탐문하여 회시하되 만약 어찌 해 볼 수 있는 방도가 있거든 힘을 다해 주선해 달라고 김병황에게 부탁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간찰은 일반적인 회문의 형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우측에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여백에 남은 사연을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