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75년 류기영(柳驥榮)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75.4717-20110630.006325700438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기영, 김두흠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75
형태사항 크기: 18.9 X 38.4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5년 류기영(柳驥榮) 서간(書簡)
1875년(고종 12) 7월 18일에 류기영김두흠에게 보낸 편지이다. 가뭄이 심하다가 단비가 내린 근래에 상대방과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모가 아이를 데리고 잘 갔는지를 묻고 있다. 이어서 설사를 앓고 있는 자신과 무더위에 병이 난 여러 가족들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아직 확실한 서울 소식을 접하지는 못했는데 국가의 모든 일을 대원위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하고 있다는 소문과 정사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고 하였다. 병산서원의 일은 자신의 집안에서 서신을 보냈으니 근래 다행히 화합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류도성의 아내가 아프다고 하니 걱정스럽고, 낙파대감이 서원에 행차할 때 상대방도 방문해 달라고 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875년 7월 18일, 류기영대원군의 정치에 관한 항간의 소문이나 암행어사에 남인이 등용된 일 등의 서울 소식에 대해 이야기 하고 병호시비에 관하여 보합한 일 등을 알리기 위해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5년(고종 12) 7월 18일에 鶴下 柳驥榮(1825-1880)이 洛厓 金斗欽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 류기영은 자가 士雍이고, 본관이 豐山으로, 厓雲 柳致睦의 손자이다. 사마시에 입격하였고, 관직으로는 佐郞을 지냈다. 수취인 김두흠의 손자인 雲齋 金秉璜은 발급인 류기영의 사위가 된다.
류기영은 아직 확실한 서울 소식을 접하지는 못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좌우에서 듣기로, 혹자는 “국가의 모든 일을 院位에게 품의하여 결정하고 있고, 各殿이 모두 화합하고 있다.”고 한 반면에, 혹자는 “다시 孔里로 행차하여 정사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세상일에 대한 두 가지 설이 모순되어 믿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各道에 파견된 暗行御史가 남인에서 5명이나 나왔으니 혹 점차 정권을 잡을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屛山書院의 일은 류기영 자신의 집안에서 서신을 보냈으니 근래 다행히 保合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으므로 한 집안의 우의에 비추어 지극히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柳道性의 처가 계속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매우 염려스럽다고 하였고, 洛坡大監이 서늘한 기운이 난 후에 서원에 행차하겠다고 하였으니 그때 김두흠도 왕림해 달라고 하였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도 일반적인 간찰의 형식을 따랐다. 회전식으로 돌려쓰지는 않았지만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남아 있는 여백과 행간에 줄을 낮춰서 적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5년 류기영(柳驥榮) 서간(書簡)

謹再拜上候書
旱熱太甚 人穀具病矣 望餘一
雨 百物回蘇 伏未審新秋
令體動止候 連享萬旺 廡內諸
節均宜 而母將幼安過 伏慕區區 不
任下誠 査下生 省節 以泄候多愆 諸
眷 困於蒸濕 無人不病 仰煎俯悶 難
以形達 西音 姑未見的報 而左右傳
聞 或云國家凡干事 稟于
院位後裁斷 而各殿 皆和合 或云
更爲行次 孔里 不爲干攝 世事兩說
矛盾 不可準信 然蔚山新倅之狀
罷 與各道繡衣之午人之多出五人
俱非願當之事 或有漸次秉軸之
道否 晝宵顒祝而已 屛山事 自鄙門
裁柬 則近幸至保合之境 同室之誼 極
爲萬幸 河北善汝氏 以閤患
方在澒洞中 聞甚悶然
洛坡大監 凉生後 行次
院中云 其時下枉 預爲伏望
餘便忙 暫此 不備 伏惟
乙亥七月十八日 査下生 柳驥榮 上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