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4월 23일, 이중린이 사돈댁의 문병과 문상을 가지 못한 슬픔과 안타까움을 전하기 위해 보낸 위문편지
내용 및 특징
1875년(고종 12) 4월 23일에 雲圃 李中麟(1838-1917)이 보낸 대필 편지이다. 발급인을 표시하는 부분에서 “代衰孫”이라고 하였는데, 말 그대로 쇠약한 손자를 대신하여 이중린이 이 慰狀을 작성하여 보낸다는 의미이다.
먼저 삼십 년 동안 고모부와 조카로서의 돈독한 정은 과연 심상한 姻戚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병이 났을 때 문병하지 못하고 장사를 지낼 때에 영결하지도 못했는데, 어느덧 묘소의 풀이 묵게 되었다고 하였다. 아직 한 번 나아가 곡하지 못했으니, 고모부께서 지각이 있다면 혹 어떻다고 할 것이겠느냐고 하였다. 이어 상대와 가족들 및 고모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부친과 조부를 잃고 날마다 널[柩] 옆을 지키고 있다고 하였다. 곧 大祥을 거행하게 되었으므로 슬프고 슬프다고 하였다. 상대가 장사를 거행하는 때에 자신이 상엿줄을 잡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였다.
喪禮는 죽음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四禮가운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서간문 가운데 위장은 일반 서간에 비해 특별한 서식을 갖추고 있다. 즉 일반 서간에 비해 글씨를 작게 쓰고 초서가 아닌 정서를 쓰며 지면의 상단을 확연하게 띄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용어 역시 특별하게 사용하는데, 서신을 나타내는 용어로 書나 札 등의 용어를 쓰지 않고 疏를 쓴다. 또 수취인이 喪人일 경우 哀座下 ․ 哀座前 ․ 哀座 ․ 哀次 등의 용어를,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을 孝廬․ 廬所 ․ 廬下 ․ 廬次 ․ 廬史라고 칭한다. 그리고 服人일 경우는 服座下 ․ 服座前 ․ 服座 ․ 服案 ․ 服史 등의 용어를 쓴다. 이는 모두 『禮記』와 『孝經』 등에 근거하여 ‘哀’자와 ‘服’자를 쓰는 것이다. 이외에도 발급인은 스스로를 罪人이라고 표현하고, 문두에 稽顙 ․ 稽顙再拜 ․ 頓首 ․ 頓首再拜 ․ 省禮 ․ 省式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용어들 역시 발급인 또는 수취인의 당시 상황이나 위계관계 등에 따라 구분하여 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