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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이만호(李晩好)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75.4717-20110630.00332570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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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호, 이성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75
형태사항 크기: 22 X 51.6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5년 이만호(李晩好) 서간(書簡)
1875년 4월 20일에 이만호가 내행의 일정을 상의하기 위해 사돈인 이성호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만호는 이달 초에 무실로 문상을 갔다가 선창도연을 유람하고 집으로 돌아왔으며, 가족들은 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집 공사는 이미 끝났고, 집으로 들어가는 날짜는 다음달 10일이 좋다고 한다고 하였다. 내행은 2일에 보내기로 했는데 만약 비가 오면 다음날 출발하고 영양과 진보 중에 편한 대로 하는 것이 어떠하냐고 물으면서 만약 이날 구애되는 일이 있으면 열흘 전으로 다시 날을 잡아 알려 달라고 전했다.
서진영

상세정보

1875년 4월 20일, 이만호가 근황을 전하고 내행의 일정을 상의하기 위해 사돈인 이성호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5년(고종 12) 4월에 李晩好(1845-1906)가 근황을 전하고 內行의 일정을 상의하기 위해 사돈인 李性浩(1839-1923)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만호는 자가 學老, 본관이 진성으로, 李彙輔의 아들이다. 그의 둘째아들인 李中翰이성호의 장녀와 혼인하였다. 이성호는 자가 惟聖, 본관이 재령으로, 藥坡 李鉉發의 아들이다. 곧 雲嶽 李涵의 주손이다.
이만호는 월초에 무실로 상문을 갔다가 좋은 친구들과 함께 仙倉陶淵의 좋은 산수를 두루 유람하고 열흘 후에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이것이 한바탕 꿈같은 신선놀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했으며, 가족들은 다행히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했다. 집 공사는 이미 끝났으나 忌年을 맞아 걱정되는 마음이 없지 않고, 사소한 건물 치장도 아직 끝낼 수 없었다고 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날짜는 내달 10일이 대길하다고 한다고 했다. 內行은 2일에 보내기로 했는데 만약 비가 오거든 다음날 출발하되 (영양과 진보를 일컫는 듯함.) 사이에서 편리한 대로 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했다. 또 이날 만약 구애되는 점이 있으면 열흘 전으로 다시 날을 잡아 회시해 달라고 했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 내용이 길지 않기 때문에 회전형식에 이르지는 않았다.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5년 이만호(李晩好) 서간(書簡)

謹拜候上

便信間何濶也 以自久無書 不敢
奉怪也 伏候南風
靜體事崇衛 庇下諸節 一例
平迪 吾家人 亦荷庇善過 孟甫
戚哀 亦支度否 幷切溸仰區區
査弟 月初作水谷問祥之行 而因與好
朋友聯笻 周覽□仙倉陶淵
山水 費一旬而歸 歸臥山廬 始覺
一場遊仙之夢也 但餘憊尙多 若
過五六年 則向衰者 豈可生意也
餘累姑依 爲幸耳 屋子 已至訖
功 而當此忌年 不無惱心 且些小
修粧 亦未可畢 而入宅日子 以來月
初十大吉云 內行 以初二日定送 若雨戱
翼日發來 而間 從便爲之如何
今番斷不可不來 以此諒之 而右日如
有拘碍之端 以旬前更爲定日 回
示詳之伏望 餘夜聞有仁里便 暫
此火下 不備 伏惟
乙亥四月念日 査弟 李晩好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