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년 6월 27일, 김병선이 조부인 상대의 안부를 살피고 자신의 병 차도에 대해 알리며 약재를 부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4년(고종 11) 6월 27일에 金秉璿(1853-1875)이 조부인 洛厓 金斗欽(1804-1877)에게 보낸 편지이다. 낙애 김두흠은 자가 文一, 본관이 豐山이다. 그는 鶴沙 金應祖의 형인 深谷 金慶祖의 후손으로, 鶴南 金重佑의 아들이다. 생부는 金重南이다. 그는 文科와 重試에 급제하고, 관직이 同副承旨에 이르렀다. 영감댁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그가 과거에 급제하여 승지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朴彭年의 후손인 順天朴氏와의 사이에서 2남 3녀를 두었는데, 그 장남이 竹史 金洛周이며, 김낙주의 셋째아들이 김병선이다.
먼저 김병선은 風雨가 불순한데 이때 김두흠의 기체가 상하지 않았는지, 어머니와 여러 형님들도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또한 마음이 가는 山地가 있는지도 물었다. 김병선 자신은 약을 복용한지 이십 일이 되었으나 아직 약효를 보지 못하고 있으므로 매우 답답하다고 하였다. 嚴宜가 끝내 한 번도 나오지 않았으니 인정이 쉬 변한다는 것에 더욱 한탄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김병선은 東泉의 소식을 근래 혹 들으셨는지 물었는데 피곤한 증세로 앓아누워 위태로운 지경을 면치 못할 것 같다는 말을 金溪의 사람에게 들었다고 하였다. 이것이 비록 다른 데를 통해 들은 것이기는 하나 놀랍고 근심스러운 마음이 깊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生脈散 5첩을 市便에 부쳐 달라고 부탁하였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氣體候’와 ‘僉兄主’ 등에 행을 바꾸어 존칭을 표현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