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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이현발(李鉉發)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73.4777-20110630.003325700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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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현발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작성시기 1873
형태사항 크기: 18.5 X 47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3년 이현발(李鉉發) 서간(書簡)
1873년 윤6월 14일에 이현발이 근황을 전하기 위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를 받은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병으로 바로 답장하지 못한 것이 죄송하다고 하면서 상대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서 상대방의 부인과 숙부가 병을 앓는다는 소식에 놀란 마음을 전했다. 자신을 비롯한 아이들은 더위로 고생하고 있으며, 손자들은 공부는 하지 않고 놀면서 날을 보낸다고 전했다. 한 달 전에 홍수를 겪었는데 심한 가뭄까지 이어져서 인심이 술렁이고 있으며, 연변에서 들리는 그릇된 소문과 척주동해비가 지난달 홍수에 가라앉았다는 소문 등에 대해서도 근심스런 마음을 전했다.
서진영

상세정보

1873년 윤6월 14일, 이현발이 근황을 전하고 세상 소문에 관한 근심스러운 회포를 전하기 위해 사돈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3년(고종 10) 윤6월에 藥坡 李鉉發(1810-1884)이 근황을 전하고 세상 소문에 관한 근심스러운 회포를 전하기 위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현발은 자가 台應, 본관이 재령으로, 李壽一의 아들이다. 壽職으로 통정대부 부호군을 받았고, 유집이 있다. 그는 雲嶽 李涵의 주손이다. 수취인은 내용상 이현발의 손자의 장인[아들의 사돈]으로 보인다. 우측 상단에 결락이 있어 내용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먼저 편지를 받은 지 여러 날이 지났음에도 늘 신병을 앓아 제때 답장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간절하다고 했다. 인편을 통해서 상대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상대 부인의 병이 아직 낫지 않고 상대 숙부가 腫患을 앓는다는 소식에 매우 놀랐다고 했다. 다만 손자며느리가 더위를 잘 이겨내고 별탈이 없는 것이 매우 기특하고 다행하다고 했다. 자신은 더위로 고생하고 또 마음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아이들은 혹서에 상해서 병이 나지 않은 놈들이 몇 되지 않아 걱정이고, 손자들은 공부는 제대로 안하면서 놀기만 하므로 얄밉다고 했다. 달포 전의 홍수는 전고에 없던 바라고 하면서 눈앞에 가득한 흰모래는 바로 참혹한 풍경이라고 했다. 극심한 가뭄까지 이어지니 장래의 생계는 고사하고 인심까지 크게 동요하고 있다고 했다. 끝으로 沿邊에서 들리는 訛言이 매우 상서롭지 못한 것 같다고 하고, 陟州東海碑가 지난달 큰물에 가라앉았다고 하는 소문 및 이에 대한 근심스런 마음 등을 전했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간찰의 경우에는 우측에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처음으로 돌아가 여백에 줄을 높여서 적었고, 행 사이에도 내용을 기록했다.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3년 이현발(李鉉發) 서간(書簡)

省式 承疏有日 而恒苦身祟 未趁
修謝 私切愧悚 卽因遞便 得接抵家
兒書 謹悉邇來
侍奠哀體候支衛 閤患之尙未復常
阮府之瘇候 聞極驚慮 將攝有方
從當差復 其爲焦悶 烏得不如來
眎耶 惟孫婦能勝冒暑 費盡苦候 連
承無見頉 私心奇幸之至 査契 困暑
委頓 無足仰喩 且傷懷之端 不一 只切
久寄之嘆 將奈何 所謂兒輩 爲酷炎
所傷 不病者無幾 種種憫憐 孫兒做業
素來無實 遊泛度了 見甚還憎 月前
懷襄 振古所無 滿目白沙 已是慘景 繼
之以亢旱 來頭活計姑舍 人心因此不無
嗷嗷之端 甚可怕可懼耳 沿邊訛言 往
往有聞 似甚不詳 天意何必盡劉生靈
而後已耶 然追得道上之傳言 陟州退潮
碑 去月大水漂沒 果爾 則本有入潮之慮
云云 東海無潮 則此亦恃而無恐 近來多有
慮之災變 不無如何之慮耳 迷阿 業欲起
▣過大水 炎熱連酷 因難弱齡踰嶺之時
▣待或可原恕否 餘付遞倘無浮沈 不備
候禮 伏惟哀察
癸酉閏月十四日 査契 李鉉發 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