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년 윤6월 14일, 이현발이 근황을 전하고 세상 소문에 관한 근심스러운 회포를 전하기 위해 사돈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3년(고종 10) 윤6월에 藥坡 李鉉發(1810-1884)이 근황을 전하고 세상 소문에 관한 근심스러운 회포를 전하기 위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현발은 자가 台應, 본관이 재령으로, 李壽一의 아들이다. 壽職으로 통정대부 부호군을 받았고, 유집이 있다. 그는 雲嶽 李涵의 주손이다. 수취인은 내용상 이현발의 손자의 장인[아들의 사돈]으로 보인다. 우측 상단에 결락이 있어 내용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먼저 편지를 받은 지 여러 날이 지났음에도 늘 신병을 앓아 제때 답장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간절하다고 했다. 인편을 통해서 상대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상대 부인의 병이 아직 낫지 않고 상대 숙부가 腫患을 앓는다는 소식에 매우 놀랐다고 했다. 다만 손자며느리가 더위를 잘 이겨내고 별탈이 없는 것이 매우 기특하고 다행하다고 했다. 자신은 더위로 고생하고 또 마음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아이들은 혹서에 상해서 병이 나지 않은 놈들이 몇 되지 않아 걱정이고, 손자들은 공부는 제대로 안하면서 놀기만 하므로 얄밉다고 했다. 달포 전의 홍수는 전고에 없던 바라고 하면서 눈앞에 가득한 흰모래는 바로 참혹한 풍경이라고 했다. 극심한 가뭄까지 이어지니 장래의 생계는 고사하고 인심까지 크게 동요하고 있다고 했다. 끝으로 沿邊에서 들리는 訛言이 매우 상서롭지 못한 것 같다고 하고, 陟州東海碑가 지난달 큰물에 가라앉았다고 하는 소문 및 이에 대한 근심스런 마음 등을 전했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간찰의 경우에는 우측에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처음으로 돌아가 여백에 줄을 높여서 적었고, 행 사이에도 내용을 기록했다.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