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72년 김병호(金秉灝)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72.4719-20110630.006325703176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병호, 김두흠
작성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작성시기 1872
형태사항 크기: 20 X 33.8
장정: 낱장
수량: 2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2년 김병호(金秉灝) 서간(書簡)
1872년(고종 9) 10월 21일에 김병호가 조부인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김병호는 며칠 밤이 지났는데 김두흠의 기체가 상하지 않았으며 집안 여러 식구들은 고루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우천 어르신이 평안하니 다행한데 그에게 서찰을 부탁하였더니, “서찰을 청한 사람이 허다하였는데, 하나도 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대의 청은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해놓고, 다시 “지곡권우가 여기 와서 청하였으니 편지를 써서 주지 않으면 뭣할 것이다. 종질인 치결이 24일쯤에 떠나 갈 것이라고 하니, 그때 原幅을 베껴 부칠 것이고 협지는 치결과 상의하여 베껴서 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김병호는 그에게 강청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아마도 과거 시험과 관련하여 청탁 편지를 얻는 문제를 전하는 대목으로 보인다.
김선주

상세정보

1872년 10월 21일, 김병호우천의 대료 어른께 부탁했던 편지를 받지 못한 사정과 과거보러 갈 때의 말을 빌릴 일 등의 내용으로 조부인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2년(고종 9) 10월 21일에 金秉灝가 조부인 洛厓 金斗欽(1804-1877)에게 보낸 편지이다. 낙애 김두흠은 자가 文一, 본관이 豐山이다. 그는 鶴沙 金應祖의 형인 深谷 金慶祖의 후손으로, 鶴南 金重佑의 아들이다. 생부는 金重南이다. 그는 文科와 重試에 급제하고, 관직이 同副承旨에 이르렀다. 영감댁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그가 과거에 급제하여 승지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朴彭年의 후손인 順天朴氏와의 사이에서 2남 3녀를 두었는데, 그 장남이 竹史 金洛周이며, 김낙주의 둘째아들이 김병호이다.
먼저 김병호는 며칠 밤이 지났는데 김두흠의 기체가 상하지 않았으며 집안 여러 식구들은 고루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제 저녁에 이곳에 도착하였는데 별탈은 없다고 하였다. 또 主家의 여러 사람들도 여전하므로 다행하다고 했다. 愚泉 大僚 어르신도 평안하니 다행한데 그에게 서찰을 부탁하였더니, “서찰을 청한 사람이 허다하였는데, 하나도 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대의 청은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해놓고, 다시 “枝谷權友가 여기 와서 앙청하였으니 편지를 써서 주지 않으면 뭣할 것이다. 從姪인 致結이 24일쯤에 떠나 갈 것이라고 하니, 그때 原幅을 베껴 부칠 것이고, 夾紙는 치결과 상의하여 베껴서 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김병호는 그에게 강청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아마도 과거 시험과 관련하여 청탁 편지를 얻는 문제를 전하는 대목으로 보인다. 말[馬]은 聲振 형이 금명간에 復科를 보러 갈 것이기 때문에 主家의 말은 거론할 바가 아니어서, 현재 사방에서 세를 구하고 있는데, 여의치 않을 것 같기에 답답하다고 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내용이 길지 않기 때문에 회전형식에 이르지는 않았다. 다만 내용을 끝낼 수 없어서 처음에 비워두었던 첫 부분에 낮게 구분을 짓고 내용을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2년 김병호(金秉灝) 서간(書簡)

大父主前 上白是 謹封
十月念一日
美洞 金承旨宅 庭下 入納
海平留孫 上平書
伏未審數宵回
氣體候保無添損節 家
內大小諸節均吉 伏慕區區 不任
下情之忱 孫 昨暮來此 姑無
顯頉 主家都候姑依 伏幸伏幸
愚泉大僚丈 氣候平安 是幸
而仰白書札 則曰請札之人 許多
一無施行 然至於子請 不可副望
又曰枝谷權友來此仰請 彼不
施行 不獨書與 有所如何 從姪 致
結 念四日間 發去云 其時原幅 寫付
矣 夾紙 則與致結相議 不寫
傳致云 故不可固請耳 下來轉聞
則傳札之路 極艱云耳 鬣者 聲
振兄 今明間 亦作覆科行 故主家
鬣 非所擧論 方今求貰四方 似難
如意 伏悶何達 餘不備 上白是
壬申十月念一日 孫 秉灝 上白

修紙回路時 覓去云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