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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권익(權{釒+翼})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71.4717-20110630.00332570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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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권익, 이현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71
형태사항 크기: 30.5 X 36.3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1년 권익(權{釒+翼}) 서간(書簡)
1871년 5월 18일에 권익이 사위와 딸의 근황을 사돈댁의 웃어른인 이현발에게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내용에는 먼저 상대방과 그 아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어버이가 편하지 못하여 걱정스러운 가운데 어린 손자가 학질이 완전히 낫지 않아서 걱정스럽다고 전하였다. 자기 집에 와 있는 사위 이병칠과 딸의 안부를 전하면서 비가 많이 내려서 정해진 날에는 길을 떠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전하고 있다.
서진영

상세정보

1871년 5월 18일, 권익이 자신에게 와 있는 이병칠 내외의 근황 등을 전하기 위해 사장인 이현발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1년(고종 8) 5월 18일에 根窩 權{釒+翼}(1821-1876)이 자신에게 와 있는 이병칠 내외의 근황 등을 전하기 위해 査丈인 藥坡 李鉉發(1810-1884)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익은 자가 士重, 본관이 안동으로, 野遺堂 權璋의 아들이며, 屛谷 權榘의 후손이다. 그의 딸 安東權氏 權弼閨李秉七에게 시집갔는데, 이병칠이현발의 손자이다. 이현발載寧人 雲嶽 李涵의 주손이다.
먼저 앞서 부친 2통의 편지를 이미 이현발이 받아 보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현발과 그 아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가 편치 못하여 이미 悶迫한 가운데 자질구레한 일들로 마음이 괴로우며, 어린 손자가 앓은 학질의 여증이 아직 없어지지 않고 있기에 매우 염려스럽다고 했다. 이병칠이 온 후에 잘 지내고 있고 자신의 딸도 큰 탈을 면하였으나 모두 비쩍 마르게 되었다고 했다. 이는 자신이 그들을 기르는 방도가 이현발이 하는 것보다 못해서 그런 것이냐고 했다. 그들을 이현발의 분부대로 챙겨 보낸 후에는 마음을 편히 먹고 몸을 조리하여 적절한 방도를 얻게 될 것이므로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다만 큰비가 심상치 않아서 물길이 아직 어려운 상황에서 진퇴가 실로 어렵다고 했다. 오직 무사히 返面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라고 했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평과 궐이 동시에 쓰였다. ‘燕’·‘慈庇’’·‘敎’ 등에는 평을 쓰고, ‘子舍’’·‘彧郞’ 등에서 궐을 써서 상대방을 높였다.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1년 권익(權{釒+翼}) 서간(書簡)

翊洞 靜几下 侍僮

稽顙 前此兩度付疏 想已
登照矣 坐際霖淫 仰戀罙切 伏不審比玆
燕閒軆度順時衛護 子舍侍履起居沖裕
否 査下生罪人 親節之諐 頑狀之貽憂 已是俯仰
悶迫處 而自餘些冗 實多惱心 小孫瘖瘧 餘祟尙
未退祛 數事叫苦 蘇快未易 當此炎暑 實切
慮念耳 彧郞 來後善留 賤嬌亦免顯恙
而幷未免形貌之戌削 居養之方 不如
慈庇之下而然耶 要之 一則爲隨衆應課之惱
一則爲騷後費心之憊 而依
敎津送之後 安意調護 必有其方 以是爲伏慰耳
第念潦漲非常 水路尙艱 旣定之日 進退實難
共坐料行事 不能安心 惟無事返面深翹耳
餘萬荒迷不備 伏惟
尊察
謹再拜 上候疏
辛未五月十八日 査下生罪人 權{釒+翼} 再拜疏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