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 5월 6일, 권익이 근황을 전하고 사위인 이병칠과 딸이 돌아오는 일에 관한 제반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이현발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1년(고종 8) 5월에 根窩 權{釒+翼}(1821-1876)이 근황을 전하고 사위인 李秉七과 딸이 돌아오는 일에 관한 제반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藥坡 李鉉發(1810-1884)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익은 자가 士重, 본관이 안동으로, 野遺堂 權璋의 아들이며, 屛谷 權榘의 후손이다. 그의 딸 安東權氏 權弼閨가 이병칠에게 시집갔는데, 이병칠은 수취인 이현발의 손자이다. 이현발은 자가 台應, 본관이 재령으로, 李壽一의 아들이다. 壽職으로 통정대부 부호군을 받았고, 유집이 있다. 그는 雲嶽 李涵의 주손이다.
먼저 梅雨가 막 그치고 찜통더위가 심한 이때에 이현발과 사돈인 李性浩 형제가 건승한지 안부를 물었다. 이어 권익은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이 齒齲(치아에 구멍이 나고 썩으면서 통증이 있는 것.)와 外祟 등으로 좋지 못한 상황에 있다는 등의 근황을 전했다.
엄하게 독려하는 가운데 이병칠이 부지런히 공부하고 있는지도 물었다. 東騷가 평정되었으나 또 긴박한 사태가 벌어졌는데 확실치는 않으나 한두 가지 소문이 낭설은 아니기에 근심스러운 마음이 그지없다고 했다. 이후 사태를 예측하기 어려우니 이병칠이 돌아올 일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현발 측의 소란스런 일이 이미 해결되고 도로에 근심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권익은 이러한 문제들을 사람을 보내어 상의하려고 했으나 이전에 이현발 쪽에 있던 자신의 종[奴]이 부름을 받고 떠났다고 하기에 인편에 이렇게 편지를 썼으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추신에서는 先社의 모임에 참석하여 이성호에게는 편지를 보낼 여유가 없다고도 했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평과 궐이 동시에 쓰였다. ‘燕攝’·‘嚴督’ 등에 평을 쓰고, ‘子舍’’·‘彧郞’’·‘貴邊’ 등에서 궐을 써서 상대방을 높였다.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