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 4월 26일, 권익이 객중의 여러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성호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1년(고종 8) 4월에 根窩 權{釒+翼}(1821-1876)이 객중의 여러 소식을 전하기 위해 李性浩(1839-1923)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익은 자가 士重, 본관이 안동으로, 野遺堂 權璋의 아들이며, 屛谷 權榘의 후손이다. 그의 딸 安東權氏 權弼閨가 李秉七에게 시집갔는데, 이병칠은 수취인 이성호의 장남이다. 이성호는 자가 惟聖, 본관이 재령으로, 藥坡 李鉉發의 아들이며, 雲嶽 李涵의 주손이다.
먼저 회신을 고대하던 즈음에 이병칠이 갑자기 도착했다는 소식과, 그를 통해 이성호 측의 당시 안부를 상세히 들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어, 여러 날이 지난 지금 이현발 및 이성호 형제, 가족들이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를 잃은 신세로 괴롭지만, 질부가 新行을 잘 치렀고, 그녀를 데리고 늙으신 査丈이 왕림함으로써 두 노인의 담소를 자신도 들을 수 있었던 점은 다행이었다고 했다.
지난번 두려웠던 일은 다시 걱정할 게 없게 됐지만 양이의 배가 정박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하면서 지난해처럼 그때에도 구축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사위가 없지 않아 수척해진 것은 괴이할 것이 없다고 했다. 왔던 종과 말[馬]은 남겨 둘 필요가 없어서 보냈는데, 돌아올 시기는 미리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부득이하게 서울로 간 致崇을 현재 기다리고 있다고도 했다. 추신에서는 이현발 앞으로는 편지를 쓰지 못해서 한스럽다고 했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 내용이 길지 않기 때문에 회전형식에 이르지는 않았다. 다만 내용을 끝낼 수 없어서 처음에 비워두었던 우측에 높이 올려서 구분을 짓고 내용을 기록했다.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