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71년 권익(權{釒+翼})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71.4717-20110630.003325700033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권익, 이성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71
형태사항 크기: 22.5 X 35.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1년 권익(權{釒+翼}) 서간(書簡)
1871년 4월 26일, 권익이 객중의 여러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성호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의 아들인 이병칠을 통해 이성호의 안부를 상세히 들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어서 상대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현재 상황을 알렸다. 서양의 배가 들어왔다는 소식과 서울로 간 사위 이수악을 기다린다는 등의 소식을 전했다.
김동현

상세정보

1871년 4월 26일, 권익이 객중의 여러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성호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1년(고종 8) 4월에 根窩 權{釒+翼}(1821-1876)이 객중의 여러 소식을 전하기 위해 李性浩(1839-1923)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익은 자가 士重, 본관이 안동으로, 野遺堂 權璋의 아들이며, 屛谷 權榘의 후손이다. 그의 딸 安東權氏 權弼閨李秉七에게 시집갔는데, 이병칠은 수취인 이성호의 장남이다. 이성호는 자가 惟聖, 본관이 재령으로, 藥坡 李鉉發의 아들이며, 雲嶽 李涵의 주손이다.
먼저 회신을 고대하던 즈음에 이병칠이 갑자기 도착했다는 소식과, 그를 통해 이성호 측의 당시 안부를 상세히 들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어, 여러 날이 지난 지금 이현발이성호 형제, 가족들이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를 잃은 신세로 괴롭지만, 질부가 新行을 잘 치렀고, 그녀를 데리고 늙으신 査丈이 왕림함으로써 두 노인의 담소를 자신도 들을 수 있었던 점은 다행이었다고 했다.
지난번 두려웠던 일은 다시 걱정할 게 없게 됐지만 양이의 배가 정박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하면서 지난해처럼 그때에도 구축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사위가 없지 않아 수척해진 것은 괴이할 것이 없다고 했다. 왔던 종과 말[馬]은 남겨 둘 필요가 없어서 보냈는데, 돌아올 시기는 미리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부득이하게 서울로 간 致崇을 현재 기다리고 있다고도 했다. 추신에서는 이현발 앞으로는 편지를 쓰지 못해서 한스럽다고 했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 내용이 길지 않기 때문에 회전형식에 이르지는 않았다. 다만 내용을 끝낼 수 없어서 처음에 비워두었던 우측에 높이 올려서 구분을 짓고 내용을 기록했다.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1년 권익(權{釒+翼}) 서간(書簡)

▣(稽)顙. 苦企回音之際, 允倩忽到, 握手驚
▣(倒), 右與常昔別, 人情果如是耶? 因細審
梗槪與徂玆大都候, 尤何等欣釋之
至. 書出已多日, 更未審
堂上壽體連衛康謐,
省下棣履晏重, 廡致幷一依否? 罪査弟,
頑縷所苦, 一味無減, 良覺悶惱. 惟是姪婦,
新行間過, 而老査丈帶枉, 兩老談讌之勝,
尤令操几者可聽, 是爲慰倖耳. 向時餘
悸, 相漸就平穩, 不必更慮. 然自西, 又有些風
傳, 此洋船之來泊故也. 未知其時驅逐如前
年否? 一番經劫之餘, 此固不緊於書尺上, 而
漫及之, 諒照如何? 婿君, 不無戌削之狀,
似無怪其如是, 所來指蹄, 不必留置, 故送
去, 而其回期姑未可預必耳. 致崇西行, 不
可已者, 續奉尤幸, 方指日以俟耳. 餘萬, 客
撓無隙, 草此, 不備. 伏惟.
辛未四月念六, 罪査弟 權{釒+翼} 拜.

上堂前, 亦不能修候, 伏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