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3월 25일, 류주목이 상대의 아들인 김낙주의 상사에 애도하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며 복을 입는 것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0년 3월 25일에 류주목이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이다. 尙州의 愚川 출신인 류주목은 자가 叔斌이고, 본관이 豐山이다. 洛坡 柳厚祚의 장남이며, 江皐 柳尋春의 손자이다. 西厓 柳成龍의 아들인 修巖 柳袗의 주손이다. 그는 一道의 丈席으로서 당시 영남의 추앙을 받던 학자이다. 그의 학문은 류심춘의 가르침을 집안에서 승습하고 성현의 책과 조선 諸先儒의 학설을 널리 연구한 데에 기초하였다고 한다. 이 편지는 별지가 있는데, 별지는 『계당집』 권3에 「答金承旨問目」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먼저, 류주목은 喪人인 김두흠의 손자를 만나게 되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고 하였다. 이어 주신 편지를 받고서 상중에 김두흠이 몸의 오른쪽이 마비되는 증상으로 늘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염려되었다고 하였다. 류주목은 류후조가 근래 감기를 앓아 많은 날 편치 못하시므로 매우 초조하다고 하였고, 집안에 痘患이 생겨서 동생이 병에 걸렸으므로 근심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아이들이 모두 밖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홀로 수응하느라 고생을 참아내기 어렵다고 하였다. 끝으로 직접 가서 위문하겠다고 하였다. 별지에서는 관직에 있는 상황에서 죽은 아들을 위해 斬衰를 입는 경우에 대한 류주목의 답변이 실려 있다. 禮學에 밝았던 류주목의 학문적 성향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도 내용이 짧아서 회문의 형태에 이르지는 않았고,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