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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류주목(柳疇睦)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69.4725-20110630.00632570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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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주목, 김낙주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작성시기 1869
형태사항 크기: 20.4 X 50.7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9년 류주목(柳疇睦) 서간(書簡)
1869년 2월 9일에 류주목김낙주에게 보낸 편지이다. 내용에는 먼저 상대방을 비롯한 집안 식구들이 모두 평안하게 지내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된다는 말을 전하였다. 자신은 험한 시절에 도산서원에 간 아버지 류후조가 매우 걱정된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돌아오는 길에 숙부를 들러 조문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서원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을 언급하면서 탄식스러운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끝으로 상대방이 보내준 정자에 관한 시는 오래도록 보관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면서 매우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서진영

상세정보

1869년 2월 9일, 류주목이 사원의 일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상대가 보내 준 시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김낙주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9년(고종 6) 2월 9일에 溪堂 柳疇睦(1813-1872)이 金洛周에게 보낸 편지이다. 尙州愚川 출신인 류주목은 자가 叔斌이고, 본관이 豐山이다. 洛坡 柳厚祚의 장남이며, 江皐 柳尋春의 손자이다. 西厓 柳成龍의 아들인 修巖 柳袗의 주손이다. 그는 一道의 丈席으로서 영남의 추앙을 받던 학자이다. 그의 학문은 류심춘의 가르침을 집안에서 승습하고 옛 성현의 책과 조선 諸先儒의 학설을 널리 연구한 데에 기초하였다고 한다.
먼저, 류주목은 험한 시절에 陶山書院에 가신 부친 류후조가 매우 걱정된다고 하였다. 류후조가 돌아오는 길에 숙부님에게 들러 조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祠院의 일은 운수가 이러하니 어찌하겠느냐고 하면서 좋지 못한 때를 만났음을 탄식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류주목은 근래 少年들의 모임이 과연 義理를 제대로 천명한 것이었냐고 물었다. 그는 위에서 處置하고 아래에서 應擧한 것에 대해 모두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끝으로 상대가 보내준 亭子에 관한 시를 몇 번이나 읽었다고 하면서 이는 정자에 오래도록 보관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였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允戚’·‘堂’ 등에 평궐을 써서 상대방을 높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9년 류주목(柳疇睦) 서간(書簡)

謝上

客臘 自下邑還
御者 題鳳而歸矣 寧不悵然
耶 歲新春半 仰復尙稽 只
深□溸 卽奉允戚 兼承
俯存 且悚且感 仍伏審比峭風

堂衛寢饍 連護支將
省棣起居休安 庇致如宜
區區不任仰慰之至 戚從 家君
陶院之旆 以其筋力之勉强 而
險歲焦慮 無以形喩 回
路歷弔
春夏叔主爲敎耳 祠院事 運
數如此 奈何 此至于渠身 身
親覩此 只有不辰之歎而已 近
日少年之會 果能克伸義理
耶 上之所以處置 下之所以應
擧 都不欲言耳 俯惠亭
詩 奉讀數回 可作亭中古紙
何等光寵耶 感感 餘不備狀禮
己巳二月初九日 戚從 疇睦 謝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