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2월 9일, 류주목이 자신의 부친 류후조의 방문 사실을 알리고 사원의 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9년(고종 6) 2월 9일에 溪堂 柳疇睦(1813-1872)이 洛厓 金斗欽(1804-1877)에게 보낸 편지이다. 尙州의 愚川 출신인 류주목은 자가 叔斌이고, 본관이 豐山이다. 洛坡 柳厚祚의 장남이며, 江皐 柳尋春의 손자이다. 西厓 柳成龍의 아들인 修巖 柳袗의 주손이다. 그는 一道의 丈席으로서 당시 영남의 추앙을 받던 학자이다. 그의 학문은 류심춘의 가르침을 집안에서 승습하고 옛 성현의 책과 조선 諸先儒의 학설을 널리 연구한 데에 기초하였다고 한다.
류주목은 부친 류후조가 陶山書院으로 가셨으니 돌아오는 길에 들러 위문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시절이 험하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루 표현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祠院의 일은 자신이 미처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될지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마음이 아플 따름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상대 손자의 婚事에 대해 언급하고 봄에 나아가서 위문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간찰의 경우에는 우측에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남은 사연을 기록했다.
수취인의 경우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으나 KSAC+K03+KSM-XF.1870.4725-20110630.006325700174 간찰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김두흠으로 볼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