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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김진림(金鎭林)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67.4717-20110630.00332570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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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진림, 이현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7
형태사항 크기: 24 X 50.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7년 김진림(金鎭林) 서간(書簡)
1867년 9월 12일에 김진림이 딸이 친정나들이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사돈인 이현발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 식구들을 비롯한 딸의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시작하여 십년 동안 친정에 못 온 딸을 그리워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추워지기 전에 날짜를 잡아서 통보해 주면 마중하러 올 것이라고 하면서 딸과 1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덧붙인 글에는 반보기 날짜는 가을걷이 일정과 추위를 피한 10월 6일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답장은 노곡 족숙의 숙소로 부쳐달라고 했다.
서진영

상세정보

1867년 9월 12일, 김진림이 금년 내로 딸이 친정나들이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사돈인 이현발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7년(고종 4) 9월에 浪坡 金鎭林(1802-1886)이 금년 내로 딸이 친정나들이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사돈인 藥坡 李鉉發(1810-1884)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진림은 자가 士恒, 본관이 의성으로, 생부는 東園 金羲壽이다. 부호군을 받았고, 시집이 있다. 이현발은 자가 台應, 본관이 재령으로, 李壽一의 아들이다. 壽職으로 통정대부 부호군을 받았고, 유집이 있다. 그는 雲嶽 李涵의 주손이다. 그의 장자인 李性浩(1839-1923)가 김진림의 둘째딸인 義城金氏 金又嬌와 혼인했다.
먼저 김진림市 인편에 자신이 보냈던 편지를 받았는지 물었다. 이현발 형제와 식솔들의 안부를 묻고, 딸이 아이들을 데리고 무탈하게 지내는지 물었다. 딸이 올해도 친정나들이를 못하면 십년을 넘기게 되는데, 십년이 지난 후 나들이하는 것은 俗忌라고 했다. 부모와 딸의 그리운 마음을 언급하며, 추워지기 전 무난한 때로 일정을 잡아 통보하면, 자신 쪽에서 마중해 올 것이라고 했다. 딸과의 회포를 풀기 위해 1년의 시간을 달라고도 했다.
이어 자신을 포함한 식솔과 조카들의 안부를 전하고, 큰조카인 金奎洛의 경우 오랜 병이 낫지도 않은 채 서울로 떠났기에, 걱정이라고 했다. 추신에서는, 반보기 날짜로 10월 6일이 좋다고 한다고 하는데, 이현발 측의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했다. 가을 농사 일정과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이날로 말씀드린다고 했다. 답신은 魯谷 族叔의 寓所로 부쳐달라고 했다.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7년 김진림(金鎭林) 서간(書簡)

迺者因市人便付書, 或無浮
沈之廢而入於
照覽否? 秋意漸深, 此際, 不審
棣床靖履, 連護衛重, 眷下
諸節, 次第平善否? 阿女率諸
兒, 俱無頉耶? 念渠覲行, 若
過今年, 已踰十年, 俗忌十年
後覲行, 老去慈情, 不面已多年
所, 則思戀之懷, 不無愔興衋, 渠
亦有洪水之思, 趁此未寒之前
間貴中無碍之時, 定日回示,
則此中, 只出半迎來而已, 何嫌其
拘掣耶? 無失今冬, 假以一周年,
以敍其相離之情, 如何如何? 査弟,
今猶昨狀, 無足仰聞者, 而
屋中諸致, 俱無他, 猶候幸粗遣,
餘外亦皆一安耳. 川上姪阿首
末, 俱赴, 而伯姪, 久病者未快
而發程, 瑕慮多端耳. 餘適因遞便, 忙付數
字候, 惟冀回承二音. 不宣, 伏惟情照下. 謹拜候狀.
丁卯菊月十二日, 査弟 金鎭林 拜拜.

女兒半定, 以十月初
六日爲好云, 而姑未
知貴中事勢之如何?
然其前, 則拘於秋收
秋耕, 其後則寒事
漸至, 故以右日牢定仰
告, 諒之否回答, 付
魯谷族叔寓所, 則似不留滯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