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7월 24일, 이상건이 족보 간행과 관련하여 직임에 천망한 이유를 설명하고 출발 일정을 묻기 위해 이수영 등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6년(고종 3) 7월에 迂隱 李相健(1795-1867)이 족보 간행과 관련하여 직임에 천망한 이유를 설명하고 출발 일정을 묻기 위해 左海 李秀榮(1809-1892) 등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 이상건은 자가 日卿, 본관이 재령으로, 盤窩 李光振의 차남이다. 이광진은 存齋 李徽逸의 주손이다. 수취인 이수영은 자가 士實, 본관이 재령으로, 恒齋 李嵩逸의 후손이다. 그는 학행으로 宰臣의 관직 천거를 받은 바 있다. 遺稿가 있으며, 李烈의 선대이다. 이 편지의 또 다른 수취인으로 자가 茂遠인 사람이 있는데 이는 미상이다.
먼저 머지않은 곳인데도 한 번 대면하기가 이렇게 어려우니 그리워진다고 했다. 이어 안부를 묻고, 남쪽으로 갈 준비가 뜻대로 되어 내일 출발하느냐고 물었다. 石川 일행이 오늘 출발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한 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환절기에 음식과 거처 등의 환경이 모두 쉽게 병을 생기게 할 것이라며, 매우 염려된다고 했다.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나 종기가 끝내 완쾌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손자도 보냈으나 그가 나이가 어리고 어찌할 줄을 모르니 잘 지도해 달라고 했다. 이 손자는 당시 23세이던 品山 李壽嵒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말썽을 일으킨 바 있던 淸源派가 금번에도 반드시 야단을 일으킬 것이므로 수응할 때 老成이 아니면 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 때문에 전일 門會를 열었을 때 수취인들을 薦望하였던 것이라고 했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우측과 상단의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하여 시계 방향으로 상단에 돌려쓰고, 우측에 비워둔 부분에서 끝맺음을 하고 있다.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