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11월 13일, 김진림이 자신의 조카인 김규락의 체포 사실 등을 전하기 위해 사돈인 이현발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6년(고종 3) 11월에 浪坡 金鎭林(1802-1886)이 자신의 조카인 金奎洛의 체포 사실 등을 전하기 위해 사돈인 藥坡 李鉉發(1810-1884)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진림은 자가 士恒, 본관이 의성으로, 생부는 東園 金羲壽이다. 부호군을 받았고, 시집이 있다. 이현발은 자가 台應, 본관이 재령으로, 李壽一의 아들이다. 壽職으로 통정대부 부호군을 받았고, 유집이 있다. 그는 雲嶽 李涵의 주손이다. 그의 장자인 李性浩(1839-1923)가 김진림의 둘째딸인 義城金氏 金又嬌와 혼인했다.
먼저 격조하여 근심이 깊었는데 뜻밖에 사위인 이성호가 멀리서 왔다고 했다. 그를 통해 이현발 형제와 집안사람들이 편안하다는 것과, 딸아이 모자가 병 없이 지냄을 알게 되니, 매우 기뻤다고 했다. 자신은 병이 오랫동안 낫지 않아서 세상살이가 괴로운 터에, 뜻밖에 집안 큰조카인 大圭가 체포되어 갇혀 있으니, 이는 200년 만에 처음 발생한 집안의 변고라서, 부끄럽고 분해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김규락은 子姪의 반열에 있는 이 가운데 謹拙의 덕성 등이 매우 뛰어난 사람인데, 갑자기 액을 만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고 했다.
홍역이 사방에서 치성한 가운데, 아이들은 기다리고 있으나 자신은 川上에 머물면서 상황을 지켜보려 한다고 했다. 洋夷가 다행히 물러나 걱정스런 마음이 조금 괜찮아졌는데, 이때 상대의 아들인 이성호를 만나게 되어 마음이 들떴다고 했다. 그러나 붙잡지 못하고 갑자기 작별하였기에 섭섭한 마음이 컸다고 했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편지는 일반적인 회문의 형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처음에 시작되는 부분도 여백없이 글을 쓰기 시작하여 남은 내용은 중간의 행간에 줄을 낮춰서 기록했다.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