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8월 3일, 김낙주가 도성에 머물면서 과거에 낙방한 일과 도목정사 등 도성의 근황을 알리기 위해 부친인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4년(고종 1) 8월 3일에 金洛周가 부친인 洛厓 金斗欽(1804-1877)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낙주는 자가 可成, 본관이 豐山이다. 낙애 김두흠의 장남이다.
먼저, 김낙주는 전에 인편으로 보낸 편지를 김두흠이 보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할머니 등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양일 동안 呈券(과거의 답안을 시관에게 제출하는 것)하였고 별탈은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시험에 낙방하고 말았으니 통분하다고 하였다. 촌내의 노소들이 모두 한꺼번에 출발하였는데, 김낙주 자신도 함께 가고자 하는 뜻이 없지는 않았으나 우선 체류하고 있는 것은 東堂試를 보려고 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하였다. 婚具를 아직 흥성하지 못한 것은 이미 換錢한 것을 태반이나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흥성되기를 기다려 혼구 등을 모두 산 후에 내려갈 생각이라고 하였다. 김낙주는 자신이 그믐 초에 집으로 돌아갈 것 같다고 하였다. 監試는 비록 공정했다고 이를 만하나 동당시는 내정되어 있다고들 한다면서, 만약 이러하다면 차라리 시험을 보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하였다. 초하루의 政事에서 道東의 金應五가 北府都事에 제수되었다고 하였으며, 이달 9일의 酌獻禮와 관련하여 睦仁會가 加資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또한 국왕의 山陵 행차가 12일에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이 편지는 피봉의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單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봉이라는 것은 피봉이 하나인 것으로 피봉이 있는 경우와 피봉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와 같이 피봉이 없는 경우는 내지에 사연을 쓰고 다 접은 다음 그 접은 곳이 바로 보통의 피봉과 동일하게 수급자와 발급자에 대한 사항을 쓰고 아래 봉합처에 해당하는 곳에 착명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