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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김낙주(金洛周)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64.1100-20110630.0063257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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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낙주, 김두흠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864
형태사항 크기: 30.8 X 38.1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4년 김낙주(金洛周) 서간(書簡)
1864년 8월 7일에 김낙주가 아버지인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집안 여러 사람들에게 안부 인사를 하고, 자신의 안부를 전하면서 이번 과거시험에서는 불합격 할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였다. 이어 혼구를 장만하는 일에 대해 보고하고, 학부와 만나서 혼사에 대해 의논하였다고 했다. 이외에도 강계 어르신이 아직 해임되지 않은 일, 서장관과 사신의 거취, 도청의 차출소식, 어제 있었던 인사이동에 대한 소식 등을 전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864년 8월 7일, 김낙주도성에서의 근황과 도목정사에서의 일을 알리기 위해 부친인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4년(고종 1) 8월 7일에 金洛周가 부친인 洛厓 金斗欽(1804-1877)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낙주는 자가 可成, 본관이 豐山이다. 낙애 김두흠의 장남이다.
김낙주는 東堂試에서 재미를 못 볼 것임을 본래 알고 있었다고 하였다. 이어 婚具를 장만하는 일과 관련하여, 換錢하여 사용한 내역 등을 조목별로 보고하였다. 손자의 혼사는 學夫와 만나서 약속하였는데, 신부의 나이가 15세에 이르렀으면 成禮하자는 뜻으로 서로 상의하였다고 했다. 江界 어르신은 아직 遞任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書狀官이 본가에 내려간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내달에 올라온다고 하였다고 했다. 勅使의 牌文이 엊그제 도착했는데 칙사가 7월 27일에 皇城에서 출발하여 내달 초생에 도성으로 들어올 것 같다고 하였다고 했다. 東宮 탄신일이 12월 6일인데, 월초에 이르러 都廳을 차출할 것이라고 했다고 하면서, 10월 보름에 행차하시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이어 어제 있은 政事에서 鄭顯錫蔚山府使에 제수되고 李晩耆接倭官에 제수되었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였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도 일반적인 간찰의 형식을 따랐다. 반시계방향으로 90도씩 돌려가며 사연을 쓰고, 행간에도 이어서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4년 김낙주(金洛周) 서간(書簡)

父主前 上白書

初言陽村叔下去 付上書 想先此
入鑒矣 秋雨連乖 凉意漸緊 伏不審辰下
大母主氣力 荷無添損
兩位分氣體候 連享萬安 各家僉位 俱
安 石兒已至蘇惺 達城科事 村內得失 何居
並伏慕區區下情之至 子 旅食依遣 是幸 而東堂
則固知無味 然而以已得換錢之未盡 推捧婚具 姑
貿得 已得漢 從近促送 伏望已得處所捧條百三
十五兩內 六十五兩 已至捧用內 門錢用下 各司處 下及齋房
夜話所入 合三十八兩二戔七分 陽村宅 八兩推去 反浦宅下去
時 五兩推去 又河隈賓五兩推用合十兩 書室錢三兩 自此推用
已上推去條二十一兩 俱一一捧上 伏望 然則門錢及村內所推 殆
近六十金 此無一分餘存 已得處換錢零條 只七十兩 則爲先
婚具 頗有不足之慮 子之下去時 行資及如干食債 俱未免
沒策 故不得已 壽洞春範換錢四十兩 爲先捧置 已得
不必加給 分付右漢 伊前所換條七十兩 斯速上送 千万
伏企 彧兒云事 㫰與學夫相對面約 而新婦年紀 若至
十五歲 則當成禮之意 相議耳 江界丈 尙未遞任 書狀官下去
本家已久 而來月間上來云 勅使牌文 再昨來到 而七月卄
七日 皇城移發 入闉 似在來月初生云
東朝誕辰 在臘月初六日 而至月初 都出廳云 若以 則十月望間 期於
行次 未知如何 餘 在子之下去時 詳探其梗槪矣 昨政
顯錫
尉山府使 李晩耆接倭官 以司池庫舍田事 以八月
爲限 以三緡 一卜買賣 而若不如意 雖呈狀 期於決米 以徵後弊 如何
夏間外處作錢未收及月便條債條 具一一督捧 松枝瓦 限一秩貿來 伏望
家用太窘 勢難夥然 右價十兩 旣有前債傳價時 十兩具利除之 其餘出給
伏望 此去粉二几 卽爲傳致于陽村宅
伏望
子之下去後 意欲觀抄擇 本倅月內入見 伏望 文衡 尙未得見 其他諸處 則具得
一番往見 而會校兩閤 皆言諡事之感祝致賀 可感耳 年事 豊凶間
今已辨矣 家近何如也 若未大段凶年 大禾築打出作錢 以爲冬內
用下 未爲不可 下諒如何 餘
不備上白
甲子八月初七日 子 洛周 上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