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8월 12일, 이효순이 집으로 돌아와서의 근황을 알리고 상대의 선조인 잠암 김의정의 시호를 청하는 문제 등을 묻기 위해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3년(철종 14) 8월 12일에 李孝淳(1789-1878)이 洛厓 金斗欽(1804-1877)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효순은 자가 源百이고, 본관이 眞城으로, 李龜鼎의 아들이다. 그는 34세의 나이로 식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바 있고, 이후 관직이 刑曹判書에 이르렀다. 그의 손자인 龍山 李晩寅은 바로 김두흠의 둘째사위이다.
먼저 이효순은 자신이 큰 고생을 실컷 겪고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 남짓인데 다시 치통을 앓고 감기에 걸려 고생한 지가 또 모두 한 달이라고 하였다. 즉 이효순은 집으로 돌아온 내내 질병에 시달렸다는 뜻이다. 이어 자신의 손자가 무탈하게 되돌아갔는지 묻고, 아울러 자신의 족친과 여러 知舊들이 다 잘 지내며, 아무개는 實職을 얻었으며, 김두흠이 과연 三司의 무슨 職에 있는지도 물었다. 또 김두흠의 선조인 潛庵 金義貞의 諡號를 청하는 일의 시기가 어떠한지 묻고, 돌아오는 날짜는 또 언제인지도 물었다. 세상 소식 가운데 혹 들을 만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이효순은 자신의 손자가 만약 큰 것에서 성공하지 못했으면 반드시 작은 것에 유의할 것인데, 손자가 오직 김두흠을 믿고 있으니 김두흠이 부응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는 손자의 관직 진출에 힘을 써달라고 김두흠에게 부탁하는 대목으로 보인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간찰의 경우에도 회문식 형식이다. 우측과 상단에 여백을 남기고 쓰기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사연을 적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