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 3월 17일, 이휘재가 잠암 김의정의 증직을 축하하기 위해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0년(철종 11) 3월 17일에 雲山 李彙載(1795-1875)가 金斗欽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 이휘재는 자가 德輿, 본관이 眞城으로, 李林淳의 아들이다. 그는 증광 생원시에서 장원을 한 바 있으며 이후 음직으로 관계에 진출하여 벼슬이 漢城府右尹에 이르렀다. 그의 손자인 雲圃 李中麟의 둘째사위가 영감댁의 주손인 金鼎燮이다.
이휘재는 潛庵 金義貞 선생의 묻혀 있던 덕을 삼백여 년 동안에 말할 수 있었던 자가 없었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세상에 그 덕이 크게 드러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본가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곧 유림에 크게 관계되는 바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비록 쇠약하지만 어찌 힘써서 의식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깊이 축하드린다고 하였다. 이 전해에 김의정이 吏曹判書에 증직된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휘재 자신은 겨울부터 봄까지 하루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조섭하고 있는 처지라고 하였고, 그저 아이의 글공부를 가르치고는 있는데 두서가 없으므로 탄식만 하고 있다고 하였다. 상대의 막내아들이 원통하게 죽은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자신은 갖가지 병증으로 인하여 형편을 봐가며 움직이고자 하는데 예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도 일반적인 간찰의 형식을 따랐다. 우측과 상단에 여백을 남겨두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남은 사연을 회전식으로 돌려쓴 다음 줄을 낮춰서 행 사이에도 내용을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