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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이휘재(李彙載)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60.4717-20110630.0063257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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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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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휘재, 김두흠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0
형태사항 크기: 29.9 X 49.8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0년 이휘재(李彙載) 서간(書簡)
1860년 3월 17일에 이휘재이의정의 증직을 축하하기 위해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 집안의 선조인 잠암 김의정이 이조판서로 증직된 일은 집안과 유림의 영광된 일이니 쇠약한 몸이지만 예식에 참석하겠다고 하면서 축하의 말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 병을 앓으면서 아이의 글공부를 가르치며 지내고 있는 자신의 근황도 전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860년 3월 17일, 이휘재가 잠암 김의정의 증직을 축하하기 위해 김두흠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0년(철종 11) 3월 17일에 雲山 李彙載(1795-1875)가 金斗欽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 이휘재는 자가 德輿, 본관이 眞城으로, 李林淳의 아들이다. 그는 증광 생원시에서 장원을 한 바 있으며 이후 음직으로 관계에 진출하여 벼슬이 漢城府右尹에 이르렀다. 그의 손자인 雲圃 李中麟의 둘째사위가 영감댁의 주손인 金鼎燮이다.
이휘재는 潛庵 金義貞 선생의 묻혀 있던 덕을 삼백여 년 동안에 말할 수 있었던 자가 없었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세상에 그 덕이 크게 드러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본가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곧 유림에 크게 관계되는 바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비록 쇠약하지만 어찌 힘써서 의식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깊이 축하드린다고 하였다. 이 전해에 김의정吏曹判書에 증직된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휘재 자신은 겨울부터 봄까지 하루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조섭하고 있는 처지라고 하였고, 그저 아이의 글공부를 가르치고는 있는데 두서가 없으므로 탄식만 하고 있다고 하였다. 상대의 막내아들이 원통하게 죽은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자신은 갖가지 병증으로 인하여 형편을 봐가며 움직이고자 하는데 예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도 일반적인 간찰의 형식을 따랐다. 우측과 상단에 여백을 남겨두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남은 사연을 회전식으로 돌려쓴 다음 줄을 낮춰서 행 사이에도 내용을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0년 이휘재(李彙載) 서간(書簡)

此歲信息 乃自
手惠先之
辭意 又勤縟如此 感愧交
並 伏審
生庭侍節康旺
阮府洛行利還 亦無大損 仰
慰 但其
體上所愼 卽輪行之氣也
調攝所宜 當漸向淸健 而如
阿聞失其乳抱 甚可惜也
潛庵先生隱德幽光 三百餘
年 未有能言之者 而今始大
顯于世 非但爲本家之榮
耀而已 乃大有關於名敎之事
士流可以增參誥命之下 雖
此衰朽 豈不
勉强 亦何待
本家之■〔言〕
■〔耶〕 深賀
深賀 査弟 經冬
涉春 無日
不病 杜門自
護 跬步難
動 似此模
樣 餘年無
幾 只有課兒尋數 又
失前忘後 未見頭
緖 自歎而已 季胤
寃化 全門喪氣 奈
何 比來日氣尤乖
且病在畏風 聽營
手顚肩臂等 種種
諸症 無非醜惡 姑欲
觀勢蠢動 而亦未可
預定 極爲悶慮 餘留
不備 謹謝
庚申三月十七日 査弟 李彙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