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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김석락(金奭洛)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860.4717-20110630.003325700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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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석락, 이현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0
형태사항 크기: 23.5 X 28.3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0년 김석락(金奭洛) 서간(書簡)
1860년 4월 4일에 김석락이 근황을 전하기 위해 이현발에게 보낸 편지이다. 해가 바뀐지 몇 달이나 되었는데 아직까지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비롯한 여러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자신은 편부모가 항상 위태로워서 애태우고 있고, 아내는 몇 차례 학질을 심하게 앓았으며, 며느리는 산달이 다되어 친정에 가 있는데 순산했다는 소식이 없어서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관동 유람을 경영한 지 10여 년이 되었지만 항상 일에 얽매여 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다. 덧붙인 글에서는 이현국에게 위로편지를 보내야 하지만 바빠서 쓰지 못했다고 하면서 한스러운 마음을 전해 달라고 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860년 4월 4일, 김석락이 자신의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이현발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0년(철종 11) 4월 4일에 金奭洛(1821-1895)이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藥坡 李鉉發(1810-1884)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석락은 자가 敬輔, 본관이 의성으로, 金鎭永의 아들이다. 東園 金羲壽의 손자이자, 金鎭健의 친아들이다. 김석락의 부인은 載寧李氏이니, 雲嶽 李涵의 주손인 李壽一의 딸이다. 따라서 김석락이수일의 장남인 이현발과는 처남매부지간이다. 이현발은 자가 台應이며, 壽職으로 통정대부 부호군을 받았고, 유집이 있다.
김석락은 偏侍(양친 중 살아 계신 한 분)가 항상 위태로운 지경에 있어 애가 타는 와중에 집사람이 草瘧으로 네다섯 차례 심하게 앓았으며, 친정에 가 있는 며느리가 순산했다는 기별이 없다는 등의 근황을 전하면서 번민을 필설로 전할 수 없다고 했다. 관동 유람을 경영한 지 10여 년이 되었지만 늘 일에 얽매여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 자신이 가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이현발도 자신을 봐주려는 뜻이 없고, 仲氏인 李鉉德龜峴으로 가면서 끝내 자신을 보지 않고 돌아갔다고 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소원하게 했기 때문이므로 남을 탓할 것이 없다고 했다. 舍叔이 객지에서 병이 겹쳐서 이현발 측의 큰 근심거리가 되었는데, 자신은 천연스레 집안에 있으면서 안부를 묻지 않았으니 그지없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추신에서는 叔氏인 李鉉國에게 위문편지를 보냈어야 하는데 황망하여 그러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 한스러운 마음을 전해 달라고 했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간찰의 경우에는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돌려쓰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남아 있는 여백에 내용을 기록했다.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0년 김석락(金奭洛) 서간(書簡)

椎魯之性 尤懶於畢硏 新舊歲閱 幾朔 尙無一字以
代面目 有時起想 不覺愔然 未知我執事 時或念及
耶 謹候維夏
靜中棣床動止萬重 子舍侍做超燕 從妹 亦將幼安度
大小諸節 俱平穩否 叔氏兄子婦之喪 系是夢外 惟已續
絃 凡百極叶云 是庸仰慰耳 姻弟 偏侍常在凜綴 已極煎
悶中 室人以草虐四五次劇痛 素來僅保形殼者 若是
震盪 似難支吾 且婦阿彌憂當頭 而歸寧在親堂 相未
聞順解之奇 憂慮之心 有甚於置之膝下 色色惱亂 如何以筆
舌遠道 坐在裏許 抽脫不得 關東一番遊觀 經營已至十
許年之久 而每每絆□未果 是亦有分劑於其間者耶 緣我不
往 座下亦無肯顧之意 仲氏作龜峴之行 而竟不顧而歸
云 此莫非自我貽阻 亦何尤何咎 舍叔客地添症 大爲諸
座下憂念 而如弟者 晏然在家 不一相問 勢雖使然 而愧汗曷
已 惟還旆後 姑免別添 是爲私幸耳 何當奉晤 臨紙尤悵 餘
撓甚 都留 不備 伏惟
棣照
謹拜候狀
庚申四月初四日 姻弟 金奭洛 拜拜

叔氏前 當有慰書 而緣忙未果 恨意
房(傍)布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