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12월 23일, 이해응이 문집을 간행하는 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59년(철종 10) 12월에 江棲 李海鷹(1783-1871)이 문집을 간행하는 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이해응은 자가 揚叟, 본관이 재령으로, 李宇均의 막내아들이다. 平齋 李隆逸의 넷째아들인 后溪 李栐의 현손이다. 수취인는 藥坡 李鉉發 혹은 그의 아들 李性浩가 될 수 있는데 이중 이성호일 가능성이 크지만 확신할 수 없다.
먼저 일전에 부친 편지를 보았느냐고 하였다. 이어서 상대 및 촌내 일가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쇠잔한 근력이 여전한 가운데, 혹한에 迎送하는 예식을 추진한 것에 대하여 시기 등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점이 모두 후회스럽다고 했다.
이해응은 문집에 대하여 倡發된 좋은 논의가 여러 종족들의 공론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篤洞에서 규례에 따라 곧바로 통문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小冊은 자신의 노혼함의 소치로 소루함이 없지 않지만, 이미 베껴내어 打成一片하였으니 다시 글을 부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서문 및 묘지와 신도비문은 당대의 대가에게 부탁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이런 뜻을 헤아려 歲後에 상의해 달라고 했다. 刻手와 서로 약조한 일을 버려둘 수 없으니 士彦을 만난다면 그들을 부리도록 부탁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黃令의 만시를 베껴서 보내달라고 부탁하였고, 추신에서는 元集 1책을 봉해서 보내달라고도 했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도 일반적인 간찰의 형식을 따랐다.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90도씩 돌려가며 내지의 상 여백을 절반으로 나눠서 기록했으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머지 내용을 기록했다.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