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 9월 16일, 조호연이 정조의 승하에 애통해하고 상대의 안부를 물으며 상대 손자를 만나게 해 주기를 청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00년(정조 24) 9월 16일에 舊堂 趙虎然(1736-1807)이 보낸 편지이다. 조호연은 趙沐洙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호연은 그의 初名이다. 자는 士威이고, 본관은 豐壤이다. 그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지역에서 후진 양성에 전념한 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먼저 조호연은 춘추가 한창인 때에 正祖가 갑자기 승하하니, 조선의 모든 백성들이 마치 부모를 잃은 것처럼 애통해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상대는 은혜를 갚고자 해도 갚을 곳이 없게 되었으므로 더욱 애통할 것이라고 하였다. 지난달 金谷으로부터 전해 받은 상대의 편지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뜻도 전하였다. 이어 서리 내리는 가을을 맞아 상대가 만중한지 안부를 물었다. 조호연 자신은 늙어서 마누라를 잃고 외로운 마음이 깊다고 하였다. 연래로 여러 부형들이 모두 돌아가셨고 스스로도 날로 쇠잔해져서 곧 죽게 될 것인데, 도를 터득할 희망은 없다고 하였다. 이런 때일수록 마음이 契家와 知友들에게 향하게 되는데, 더구나 상대와 같이 姻親의 分誼가 있는 곳에는 그러한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고 하였다. 지난번에 마땅히 경사를 함께 축하해야 할 일이 있었으나 자신이 정성을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 늘그막에 이르러서는 한 번의 만남을 기약할 수 없기에 그저 멍하니 탄식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조호연은 상대의 손자가 眉宇가 사랑스럽고 말과 행동에 가풍이 그대로 묻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아직 한 번도 그를 만나지 못하여 매우 한스럽다고 하였다. 자신이 조만간 금곡으로 갈 일이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특별히 그를 보내줘서 만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90도를 기준으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며 내용을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