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 9월 10일, 김종석이 남계서원의 경복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추향에 관해 조언을 듣기 위해 류규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98년(정조 22) 9월 10일에 美谷 金宗錫(1760-1804)이 臨汝齋 柳{氵+奎}(1730-1808)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종석은 자가 聖圭, 본관이 豐山으로, 金相穆의 아들이다. 그는 생원시에 입격한 바 있고, 바로 영감댁 洛厓 金斗欽의 조부이다. 류규는 자가 秀夫, 본관이 豐山으로, 柳聖五의 아들이다. 그는 풍산류씨 家學의 맥을 잇는 학자이며, 관직은 司憲府監察 등을 지냈다.
김종석은 南溪書院의 追享 날짜가 벌써 잡혔는데, 相禮의 임무가 자신에게 맡겨졌다고 하였다. 그는 남계서원이 傾覆된 이때에 士子의 직분에 따라서 권도를 쫓아 쓰러진 상황을 붙들어야 하겠지만 다른 데서 듣기로는 사태가 잇따라 일어났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냐고 하였다. 그러면서 전후로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가르쳐 달라고 하였고, 만약 難便한 일이 있거든 상세히 가르침을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만약 우려가 없다면 추향에 따른 廟內의 坐次와 從配, 儀節 및 모든 節目을 하나하나 하교해 달라고 하였다. 김종석은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듣지도 않겠으니 하나하나 자세히 지도해 달라고 하였는데 지역 유림의 大事 추진에 있어 류규에게 많이 의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90도를 기준으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며 내용을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풍산김씨세보』,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