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7년 3월 9일, 권광한 등이 김성탁이 복관되는 일을 축하하기 위해 김시전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97년(정조 21) 3월 9일에 權光漢 등이 김시전에게 보낸 편지이다. 수취인은 시기적으로 霽山 金聖鐸의 손자인 金始全(1736-1816)으로 보인다. 발급인 권광한과 權明漢은 葛庵 李玄逸을 스승으로 독실하게 섬겼던 退庵 權重道의 손자들인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들은 霽山 金聖鐸 선생을 復官시키라는 명이 갑자기 내렸으니 우리 영남의 지극한 광영이며 本孫들에게는 더욱 영광스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소식을 듣고 마땅히 축하편지를 보냈어야 했으나 궁벽한 곳에 살면서 인편을 만나지 못해서 그러지 못하였다고 했다. 또한 改題하던 날에 원근에서 모두 모였다고 들었으니 실로 드물게 있는 성대한 일인데, 자신들은 먼 곳에 있기에 직접 가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이미 행사가 지난 후에 들었으므로 함께 즐기지 못해 한스럽다고 했다. 이들은 김성탁이 복관된 것을 계기로 갈암 이현일의 원통한 일도 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임금의 결정이 아직 지연되고 藏窩 李重祖가 이현일을 신원하는 일로 몇 년 동안이나 서울에 머물며 온갖 고초를 다 겪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안타깝다고 했고, 상대도 역시 이런 마음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이중조와 서신을 안정적으로 교환하는 방법에 대해 언급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90도를 기준으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며 내용을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