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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 김기명(金起溟)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746.4717-20110630.009025700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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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기명, 김낙행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46
형태사항 크기: 21.5 X 40.3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천전 의성김씨 제산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46년 김기명(金起溟) 서간(書簡)
1746년(영조 22) 4월 26일에 김기명김낙행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김낙행신지도에서 1월 7일에 보낸 편지를 2월 열흘쯤에 받았는데 그때 놀랐던 심정은 말할 수 없지만 금방 유배령이 내렸다는 기별을 곧 받고서 임금의 은덕에 감축하였다고 했다. 자신이 비록 겨를이 없는 와중에 있었더라도 매우 답답하던 차에 어제 들른 종이 김낙행의 어머니가 전염병을 심각하게 앓고 아직 쾌차하지 못했고 김낙행의 중부가 둘째 며느리를 잃었다는 소식을 전하니 매우 경악하였다고 했다. 김기호가 2월 27일에 역병이 도는 곳에서 마마와 같은 병을 얻어 12일에 끝내 숨졌는데 형제를 잃은 애통함이 크다고 했다. 더구나 윤달 6일에 아이의 병이 악화되고 며느리도 병을 앓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다행히 어제 부자가 상면하였기에 매우 다행이라고 했다. 김낙행이 집을 언제 떠났고 김성탁의 기거가 근래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김선주

상세정보

1746년 4월 26일, 김기명이 역병으로 집안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상황을 알리기 위해 김낙행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46년(영조 22) 4월 26일에 息窩 金起溟이 九思堂 金樂行(1708-1766)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기명은 자가 鵬擧 혹은 天游이며, 본관은 順天이다. 그는 바로 秋潭 金如萬의 손자인데, 김여만김낙행의 조부인 金泰重의 장인이다. 따라서 김기명김성탁은 서로 고종지간이 된다. 이에 더하여 김기명은 錦翁 金學培의 손자인 金翼濂의 장인이기도 하다.
먼저 김기명김낙행薪智島에서 1월 7일에 보낸 편지를 2월 열흘쯤에 받았다고 하였다. 그때 놀랐던 심사는 지금 追說할 수 없지만 금방 유배령이 내렸다는 기별을 곧 받고서 天恩에 감축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확실한 소식이 없었고 이어 자신이 喪事로 골몰되어 있었다고 했다. 또 川前의 소식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비록 겨를이 없는 와중에 있었더라도 매우 답답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어제 들른 김낙행의 노비가, 김낙행의 어머니가 時疾을 심각하게 앓고 아직 쾌차하지 못했고 김낙행의 仲父가 次婦를 잃었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하면서 이것이 사실이냐고 묻고, 매우 경악하였다고 했다. 김기명金起浩가 2월 27일에 역병이 도는 곳에서 병을 얻었는데 그 증상이 마마와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해 마마를 치료하였으나 12일에 끝내 숨졌으므로, 형제를 잃은 애통함이 크다고 했다. 더구나 大斂하는 날에 喪人이 앓기 시작하고 다음날에 그 며느리가 자리에 누웠으며 두 조카 집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전염되었다고 하였다. 또 22일에는 㦿도 감염되었는데 열이 떨어진 후에 자신이 獨孫을 데리고 비접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윤달 6일에 아이의 병이 악화되고 며느리도 병을 앓게 되었다고 했다. 김기명은 거의 다한 목숨으로 극렬한 우환을 홀로 맞닥뜨리고 있으니 넋을 잃고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다행히 어제 부자가 상면하였기에 매우 다행하였다고 했다. 김기명김낙행이 집을 언제 떠났고 김성탁의 기거가 근래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끝으로 김낙행 일가의 喪事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다고 했는데, 柳令公이 지방관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갑자기 客館에서 죽었으니 매우 애통하다고 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46년 김기명(金起溟) 서간(書簡)

自島中 正月初七日所出惠書 二月旬間 始承
見 伊時驚心事 今不可退說 然旋得遠配之奇
天恩感祝 而久無的報 因以汨溺喪憂 以前消息 不
能相通 則雖在憂遑中 一心懸鬱 倍極於際此險
亂時世矣 今聞貴星 昨過此 而傳云 萱闈重經
時疾 尙欠快安 色憂未復 猶在混犯中 令仲父
渾室不淨 至有次婦之喪云 其然否 一網天地 似非
浪傳 聞極驚愕 自不定心也 此中 時天二月卄七日 得
病於疫所 相通之際 證情似痘 而變動危急 故專意
於治痘之方 十二日 竟不得救 痛割之情 已無可言 而大
斂之日 喪人始痛 翌日 其婦繼臥 兩姪家兒曺
一時轉染 卄二日 㦿兒亦染痛 退熱後 老物率獨孫出
避 閏月初六日 兒病又爲加痛 子婦亦繼痛 前後之病 出沒死境 殆
將三箇月 以我垂盡之命 獨當劇憂 晝夜焦煎
盡失心魂 只待死日 而猶且不絶 始於昨日 父子相面 實
是初慮之所不到也 慰幸滿萬 而値此殺歲 救病
一節言之 齒酸 目今澌毁之像 補完沒策 蘇復無
期 是悶是慮 離庭之日 果在那時 而尊府氣
力眠食 近來何如 衰悴神觀 不至大損耶 傷念
之情 去益難耐 此生何時 得見天日之照也 年事凶
荒 彼不如此甚云 而調度之節 何以爲畫 空念自不已
已 而況且此土景像 已無言地 奉板輿還泊後 卽
有大憂患 供養之節 必多窘迫 爲之慮念 尤不弛
也 又聞一家喪慽連綿云 不勝驚怛 柳令公 新蒞未
久 遽殞於客館 豈但鄕運之不幸 痛悼痛悼 從 累
易寓舍 時居于山下齋室 欲以來初還頓 而挾戶出
幕連仍 是可慮也 聞貴星 明將還歸 草草寄
音 憂患之餘 神思昏眩 語不成說 且坐忙迫 謫裡去書及
慰唁 未及修送 當竢後便耳 唯祝
色憂爲收 侍況戒愼 保無後憂 千萬千萬 不宣 希
照 狀上
丙寅四月卄六日 表從叔 服人 起溟 省式

善餘兄 得免切己之憂 而亦無恙 則其誠
度艱急之狀 何時可忘 而同病之歎 恨無及矣
恨未另候 爲傳我況▣▣望
季通所患 近何苦歇 此後 凭音無路 若付一書 而詳
悉凡耗 傳送于世方 則可以休至▣ 伊湖女息安否
亦不聞知 如有所聞 來書 並及之 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