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4년 5월 11일, 권운대가 잇단 상사에 애도를 표하며 자신의 근황을 알리기 위해 김성탁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44년(영조 20) 5월 11일에 黙齋 權運大(1683-?)가 霽山 金聖鐸(1684-1747)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 권운대는 자가 休仲, 본관이 안동으로, 宣祖 때의 선비인 龍巒 權紀의 후손이다. 그는 戊申亂 때에 逋軒 權德秀와 함께 松夜로부터 吉安의 蘭谷으로 은둔하였고, 권덕수가 죽은 이후 다시 松堤로 들어가 洗心臺를 조성하여 소요하였다. 과거를 포기하고 密庵 李栽의 문하에서 학문에 전념하는 한편, 권기를 천양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그는 특히 사물의 기미를 잘 파악하였다고 한다.
먼저 권운대는 김성탁이 모친상을 치르고 돌아가던 때에 다른 사람을 따라서 잠시 위문하였으나 바쁜 상황에서 마음을 제대로 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 후 집안을 병이 옭아매어 자신이 상엿줄을 잡지도 못했던 것 등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했다. 또한 김성탁의 從氏인 玉汝氏 형제가 잇달아 죽고 伊湖 金世鏞(1673-1742) 어르신도 돌아간 것에 대하여 애통한 마음을 표하였다. 권운대 자신은 형제가 죽고 자식도 죽은 데 이어서, 宗家에 화가 닥쳤다고 하였다. 이어 김성탁이 십년 동안에 바닷가에 있으면서도 건승하고 정신이 완전하니 평소 정양한 바를 이에서 알 수 있다고도 하였다. 끝으로 자애하여 知舊들의 바람에 부응해 달라고 하였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으로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君子와 같은 단어에서 줄을 바꾸는 형식으로 상대에 대한 존경을 표했고, 令從과 兄 등에서 존장자를 지칭하는 특정한 단어에서 궐이 이루어졌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