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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2년 김기명(金起溟)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742.4713-20110630.0090257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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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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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기명, 김낙행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42
형태사항 크기: 16.5 X 43.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천전 의성김씨 제산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42년 김기명(金起溟) 서간(書簡)
1742년(영조 18) 4월 17일에 김기명김성탁의 안부를 묻기 위해 김낙행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기명은 먼저 광양의 소식이 막연하여 매우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2월 23일에는 조카가 새로 시집간 딸을 유행병으로 잃었고, 이달 초에는 조카의 내외 및 그 아들과 여자 종이 한꺼번에 감염되었으므로,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지금은 겨우 차도가 있어 크게 다행하지만, 아직 온 마을에 병 기운이 가득하므로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낙행 쪽에서도 조심하라고 당부하였다. 두릉이제겸의 편지가 근래에 왔는데, 다인의 노는 땅을 점유하는 일로 이익필과 일을 함께 하고자 하므로, 일찍이 김낙행의 동생이자 이익필의 사위인 김제행에게 이를 언급한 바 있었다고 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김제행이 부탁했는지 묻고, 다시 하산으로 통보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김선주

상세정보

1742년 4월 17일, 김기명김성탁의 안부를 묻기 위해 김낙행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42년(영조 18) 4월 17일에 息窩 金起溟이 霽山 金聖鐸의 안부를 묻기 위해 九思堂 金樂行(1708-1766)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기명은 자가 鵬擧 혹은 天游이며, 본관은 順天이다. 그는 바로 秋潭 金如萬의 손자인데, 김여만김낙행의 조부인 金泰重의 장인이다. 따라서 김기명김성탁은 서로 고종지간이 된다. 이에 더하여 김기명은 錦翁 金學培의 손자인 金翼濂의 장인이기도 하다.
김기명은 먼저 晞陽의 소식이 막연하여 매우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희양光陽의 이칭인데, 당시 김성탁이 이곳에서 유배를 살고 있었다. 김기명은 이미 돌아온 金振河가 다만 광양의 痘患이 잠잠해져서 김성탁이 다시 寓舍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만을 전하였다고 자신의 外孫 편으로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소식들은 상세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하다고 하면서, 그곳 생활이 어떠한지 인편으로 전해 달라고 했다. 2월 23일에는 조카가 새로 시집간 딸을 유행병으로 잃었고, 이달 초에는 조카의 내외 및 그 아들과 婢僕이 한꺼번에 감염되었으므로,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지금은 겨우 차도가 있어 크게 다행하지만, 아직 온 마을에 병 기운이 가득하므로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낙행 쪽에서도 조심하라고 당부하였다. 杜陵李濟兼의 편지가 근자에 왔는데, 多仁의 노는 땅을 점유하는 일로 全陽君 李益馝과 일을 함께 하고자 하므로, 일찍이 김낙행의 동생이자 이익필의 사위인 金霽行에게 이를 언급한 바 있었다고 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김제행이 부탁했는지 묻고, 다시 霞山으로 통보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42년 김기명(金起溟) 서간(書簡)

金生員 下史
退甫 拜狀
數月阻信 懸鬱日深 況時氣乖
常 天行之疾 到處大亂耶 不審
玆辰
侍下眷集 如何 令仲父哀況 亦如
晞陽消息 尤漠然莫憑 日夕
憂慮 但懸於南天而已 卽仍外孫來
得聞大收已還 則只傳彼中痘患
淨熄 還頓寓舍云 其他凡耗
不得詳及 深可鬱鬱也 所忌果至
無憂 而起居眠食 如何云也 幸因
便 破鬱爲望 此中 二月念三 舍
姪以時疾 喪其新嫁女 慘毒之
中 後慮深矣 今月初 姪之內外
及其子婢僕三四 一時染痛 其爲
悶慮 如何可旣 今才擧頭 爲幸大
矣 而一村無淨地 故遂坐待數 如在
針氈 未知末梢 更如何出場也
仁里或無此逼切之虞耶 須加
戒謹焉 李士達書 頃來 而爲
圖占 多仁閑土 幸欲與全陽
同事 故曾及於季通 而前冬
君書 有眎意矣 其能託得否
觀此書意 更通于霞山如何
因外孫之歸 草此寄音 而紙乏
未候於
令仲父氏前 爲恨 不宣 希
照 拜狀
壬戌四月十七 表從 起溟

甥姪時在其庭下 安否何如 忙且無紙 未書爲恨 以此艱狀
推及其經過 不覺心折 而其於空念何 傷哉傷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