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2년 4월 17일, 김기명이 김성탁의 안부를 묻기 위해 김낙행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42년(영조 18) 4월 17일에 息窩 金起溟이 霽山 金聖鐸의 안부를 묻기 위해 九思堂 金樂行(1708-1766)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기명은 자가 鵬擧 혹은 天游이며, 본관은 順天이다. 그는 바로 秋潭 金如萬의 손자인데, 김여만은 김낙행의 조부인 金泰重의 장인이다. 따라서 김기명과 김성탁은 서로 고종지간이 된다. 이에 더하여 김기명은 錦翁 金學培의 손자인 金翼濂의 장인이기도 하다.
김기명은 먼저 晞陽의 소식이 막연하여 매우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희양은 光陽의 이칭인데, 당시 김성탁이 이곳에서 유배를 살고 있었다. 김기명은 이미 돌아온 金振河가 다만 광양의 痘患이 잠잠해져서 김성탁이 다시 寓舍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만을 전하였다고 자신의 外孫 편으로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소식들은 상세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하다고 하면서, 그곳 생활이 어떠한지 인편으로 전해 달라고 했다. 2월 23일에는 조카가 새로 시집간 딸을 유행병으로 잃었고, 이달 초에는 조카의 내외 및 그 아들과 婢僕이 한꺼번에 감염되었으므로,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지금은 겨우 차도가 있어 크게 다행하지만, 아직 온 마을에 병 기운이 가득하므로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낙행 쪽에서도 조심하라고 당부하였다. 杜陵李濟兼의 편지가 근자에 왔는데, 多仁의 노는 땅을 점유하는 일로 全陽君 李益馝과 일을 함께 하고자 하므로, 일찍이 김낙행의 동생이자 이익필의 사위인 金霽行에게 이를 언급한 바 있었다고 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김제행이 부탁했는지 묻고, 다시 霞山으로 통보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